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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했다. 맘먹은 대로 개혁을 밀어붙이고 유럽통화동맹에 들어가려면 의회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믿었다. 의원 임기가 1년 남았지만 총선을 앞당겼다. 대통령 권한이었다. 그러나 좌파 연합이 과반 314석을 차지하면서 이 계획은 무참히 깨졌다. 우파 시라크는 사회당 조스팽을 총리에 앉히지 않을 수 없었다. 세 번째 좌우 동거 정부가 시작됐다. 시라크는 정치력을 잃고 거부권도 행사하지 못했다.

▶골수 좌파 오브리가 사회고용장관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총선 분위기를 업고 '근로시간단축법'을 꺼내 들었다. 법정 근로를 주 39시간에서 35시간으로 줄인다는 게 골자였다. 임금은 안 깎는다는 조건도 붙였다. 좌파 정부는 근로시간이 줄어든 만큼 일자리 70만개가 생긴다고 장담했다. '오브리법'에 반대하는 기업주 3만명이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벌였지만 1999년 법은 통과됐다. 대통령은 무기력했다.

▶17년이 흘렀다. 올랑드 대통령이 '주 35시간제'를 사실상 폐지하는 노동법 개정안을 각료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사회당이 제 손으로 박은 쐐기를 제 손으로 뽑았다. 이젠 주 35시간 넘게 일할지 말지 기업마다 투표해 결정하면 그만이다. 초과 근무 수당을 산별(産別) 협약보다 낮게 매겨도 된다. 정규직 해고도 쉬워졌다. 노동장관 이름을 딴 '엘 코므리법'이다. 의회 표결 없이도 '오브리법'을 '엘 코므리법'으로 뒤집는 대통령 긴급명령권이 발동된 덕이다.

▶오브리는 천생 사회주의자다. 선 굵은 얼굴 윤곽과 화장기 없는 표정, 헝클어진 머리의 그녀는 사회당의 야성(野性) 회복과 좌파 정당으로서 정체성 확립을 부르짖는다. 오브리는 엘 코므리법이 "프랑스 사회 계약을 배신한다"며 모든 당직에서 물러났다. "이게 좌파가 할 일이냐"고 따졌다. 고용 유연성을 강조하다간 안정성이 흔들린다고 했다. 그러나 프랑스 현실은 그 말에 귀 기울일 틈이 없다.

▶청년 실업률이 영국·독일보다 갑절이다. 실업자가 380만인데 나아질 기미가 없다. 구조적 경직성을 17년 겪고서야 '해고가 쉬워야 채용도 쉽다'는 역설을 깨달은 걸까. 노조는 "우리가 크리넥스냐. 왜 한 번 쓰고 버리느냐"고 했다. 그러나 사르코지는 '더 일해 더 벌자'는 슬로건으로 2002년 대선을 이겼다. 주 35시간제는 그때 흔들렸다. 오브리와 엘 코므리는 실업을 줄이겠다는 명분은 같고 방법은 반대다. 노동법에 손만 대면 시위대가 거리에 넘치지만 그래도 프랑스는 경제 상황에 따라 법을 바꾼다. 손도 못 대는 우리보다는 낫다. 기고자 : 김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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