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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무 지음｜사회평론｜각 권 544쪽｜각 권 2만2000원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우뚝 솟은 건물 '파르테논 신전'에 대한 설명은 서울 도심 덕수궁 석조전에 얽힌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석조전이 2400년 전 아테네인들이 페르시아전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파르테논을 모방한 건물이란 걸 아시는지. 높이 치솟은 석주(石柱)나 삼각형 모양의 대들보가 이를 보여준다. 근대화가 절박했던 구한말 조선은 '그리스(서양) 따라 하기'를 통해 우리 역시 현대문명의 일원임을 보여주려 했다. 하지만 결국 미완(未完)의 기획이었다.

애초에 그리스를 따라 한 원조는 서구 국가들이었다. 긴 중세의 터널을 지나온 그들은 그리스·로마 따라 하기를 통해 근대로 진입했다. 독일이 역사적 위인들을 기리는 전당용으로 지은 레겐스부르크의 '발할라'나 미국 내슈빌의 파르테논 복제 건물, 워싱턴의 링컨기념관도 모두 파르테논을 본뜬 건물들이다. 미술사학자인 저자는 21세기 서울의 거리를 거닐면서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입구나 이름 모를 웨딩홀 입구에서 파르테논의 흔적을 읽어내고 우리에게 들려준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미술사를 짚어보는 전체 8권짜리 '난생처음…' 시리즈의 첫 번째 두 권이 나왔다. 1권은 4만년 전부터 5000년 전까지 대략 3만5000년 동안의 원시 미술과 이집트·메소포타미아 미술을, 2권은 그리스·로마 미술을 다뤘다. 미술사학자인 양정무(49)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관심은 고대 미술품을 단순 나열하는 데 있지 않다. 마음껏 고전 미술의 바다를 헤엄치도록 안내하다가도 어느 순간 '지금 여기 우리'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그리스 도시 테베의 막강한 군사 조직이었던 동성애자 부대를 이야기하면서 신라시대 화랑들 사이에 동성애적 관계가 있었음이 암시된 '화랑세기'를 함께 언급한다. 저자는 "미술사적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선 막연하기만 할 뿐 아름다움의 정체를 알 수 없다"며 "작가와 작품도 중요하지만, 미술이 작동하는 사회 구조를 알 때 제대로 된 아름다움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알렉산더 대왕의 두상(頭像)을 말할 때는 역대 서양 지도자들의 '이미지 만들기' 전략을 들려준다. 젊은 알렉산더 대왕의 모습은 드넓은 제국을 통치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선전물이었다. 신문도 TV도 없던 시절 광활한 제국을 지배하기 위해 마케도니아에선 영토 곳곳에 알렉산더의 조각을 세웠다. 사자 갈기처럼 풀어헤친 머리카락, 움푹 들어가 비전이 느껴지는 눈은 지금도 서구 정치 지도자들이 닮고 싶어하는 이미지. 저자에게 요즘 정치인 중 누가 '알렉산더 대왕 따라 하기'의 대가(大家)인 것 같으냐고 묻자,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트럼프가 엄지손가락을 척 올려 오른손을 높이 치켜드는 모습도 사실은 로마 황제 따라 하기라는 것. 문자가 없을 때인 4만 년 전 미술의 탄생 이래 인류는 이미지를 활용해 왔기에 우리의 무의식은 언어보다 이미지를 통한 의미 전달에 사실 더 익숙하다. 미술사 공부는 우리 주변의 다양한 시각적 이미지를 읽어내는 안목(眼目)을 키우는 연습이기도 하다.

양정무 교수는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나와 영국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대 영국 런던 유학시절에는 주재원과 교민들 사이에서 대영박물관과 내셔널 갤러리 등의 박물관·미술관 전시 작품에 관해 모르는 것이 없는 유학생으로 유명했다. 권당 500쪽이 넘는 두께에 지레 주눅 들 필요는 없다. 그림은 모두 설명과 같은 페이지에 실렸고, 장(章)이 끝나면 요약 노트를 만들어 머릿속에 좀 더 많은 지식을 남겨주기 위해 배려했다.

책은 처음부터 흔한 서양미술 탐방서의 느낌을 지우며 시작한다. 예컨대 첫 대목의 주인공은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빗살무늬토기와 한국형 돌도끼다. 우리는 경기 연천 전곡리에서 돌도끼가 나왔다는 것만 알았지,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자세히 모른다. 저자에 따르면 이 돌도끼는 뚜렷한 좌우 대칭이 특징인데, 기능적으로 이렇게 만들 이유가 없었다. 한데 누군가 굳이 좌우 대칭으로 '아름답게' 만들었고, 이는 이성(異性)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는 게 이른바 '섹시한 주먹도끼 이론'이다. 서구 학자들은 오랫동안 인도 서쪽에서만 이런 돌도끼가 발굴되고, 인도 동쪽에선 정교함이 떨어지는 찍개가 나오는 것을 근거로 은근히 자신들을 한 수 위로 생각했다. 한데 한국 돌도끼가 이런 통설을 깨버린 것이다. 굳이 이 이야기로 책을 시작한 이유도 서양 미술사를 한국적 문맥으로 끌어들이기 위함일 것이다.

기고자 : 신동흔
본문자수 : 2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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