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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에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작년 7월에 다녀왔습니다. 숲이 우거진 공원 옆으로 오타강(太田川)이 흐르고, 원폭으로 돔이 날아간 시청 폐허에 참새가 짹짹거렸습니다. 미풍에 소금기가 감도는 이 도시에서 1945년 8월 6일 14만 명이 죽고, 사흘 뒤 나가사키에서 다시 7만 명이 죽었습니다. 이 가운데 4만 명이 조선 사람이었다는 건 한국을 제외한 바깥세상에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일본외신기자협회 도움을 받아 미국·러시아·독일·프랑스·스위스·중국 등 10개국 기자 15명이 함께 움직였습니다. 기사를 쓰기 싫더군요. 마침 시점이 미묘하다는 핑계가 있었습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종전 70주년 기념 담화를 발표하기 한 달 전이라, 한국 여론이 곤두서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옹졸했던 것 같습니다. 일본 때문에 고통받았으니까 일본이 받은 고통은 그게 무엇이 됐건 '당해도 싸다'고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그걸 부끄러워하게 만드는 말을, 생존자 오구라 게이코(79) 할머니에게서 들었습니다.

"미군 폭격기에서 까만 점 같은 폭탄이 천천히 떨어졌어요. 다음 순간 버섯구름이 솟았어요. 창자가 튀어나온 사람들이 '오카상, 오카상(어머니, 어머니)!'을 불렀어요. 살아남은 사람들이 반쯤 녹거나 뼈만 남은 시신 더미를 밟고 필사적으로 달렸어요. 많은 사람이 강에 뛰어들었어요. 뜨거우니까, 목이 마르니까."

할머니는 오타강을 가리키며 "저 강에 꽉 찬 시신이 썰물 때 바다로 밀려갔다 밀물 때 다시 강어귀로 밀려오기를 사흘 넘게 반복했다"고 했습니다. "수십 년간 죄책감이 있었어요. 나는 왜 살아남았을까. 살아남은 의미가 뭘까. 여기 올 때마다 그때 죽은 분들에게 '미안해요. 아직도 이 세상엔 핵무기가 있어요'라고 사죄해요."

하지만 나는 그런 말씀에 완전히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일본이 세계 유일의 원폭 피해국이라는 얘기를 내가 오늘 몇 번째 듣나' 헤아리고, '그 말이 왜 이렇게 귀에 거슬릴까' 생각하느라 마음이 어수선했습니다.

나에게는 히로시마의 참상에 동정하는 마음, 핵 없는 세상을 응원하는 마음, '일본의 사죄만큼 한국의 관용도 중요하다'고 믿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히로시마가 아니었다면 더 오래 고통받았을 것'이라는 현실 판단이 있습니다.

약한 나라를 침탈한 나라는 일본 말고도 많지만, 일본보다 표독하고 집요했던 나라는 나치 독일밖에 없습니다. 이 나라가 자기 죄업의 결과를 70년 넘게 아파하는 모습이, 그래서 때로 불현듯 역겹습니다. 함께 기념관을 둘러본 미국 기자가 "여긴 '1945년 8월 6일'만 있고, 그 이전의 세계는 없었던 것 같은 공간"이라고 툭 한마디 했습니다.

내 얼굴에 표가 났던 걸까요. 안내하던 분이 중간에 따로 불러 "일행 중에 한국 기자가 있다는 걸 알고, 생존자들이 '조선 사람도 많이 죽었다'는 얘기를 꼭 하고 싶어했는데 주제와 일정상 그러지 못했다"고 미안해했습니다. 선의라고 판단해 "아, 네" 하고 웃었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갈 때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그땐 웃어넘길 수 없을 것입니다. 조선 사람들은 식민지배와 원폭으로 두 번 고통받았습니다. 그 고통에 대해 뭐라 하실지 히로시마에 지켜보러 가겠습니다. 기고자 : 김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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