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아이스하키 금메달만 13개(남자 9개·여자 4개)를 수집한 캐나다는 국기(國技) 아이스하키에 죽고 사는 나라다. 단적인 사례로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의 절반에 가까운 선수가 캐나다 출신이다. 반면 NBA(미 프로농구) 그리즐리스는 아이스하키의 인기에 밀려 2001년에 캐나다 밴쿠버에서 미국 멤피스로 연고를 이전할 만큼 농구 인기는 신통치 않았다.

이런 나라가 농구로 발칵 뒤집혔다. NBA의 유일한 캐나다 연고팀인 토론토 랩터스가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랩터스는 16일 마이애미 히트를 116대89로 물리치고 4승3패로 동부 콘퍼런스 결승에 올랐다. 1995년 창단 이후 처음이다. 종전엔 빈스 카터가 활약했던 2000~2001시즌의 콘퍼런스 준결승 진출이 최고 성적이었다.

7차전이 열린 토론토의 홈구장 에어 캐나다 센터는 일찌감치 매진되며 '야외응원'까지 벌어졌다. 공룡 '랩터'에서 딴 팀 이름 때문에 이 경기장은 '쥬라기 공원'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데, 수천 명의 팬이 대형 모니터를 보며 열띤 야외 응원을 펼쳤다. 랩터스가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자 팬들은 'WE THE NORTH'를 외쳤다. 미국보다 위도상 북쪽인 캐나다를 대표하는 팀이라는 자부심이 담겨 있는 구호였다. 현지 언론은 "마치 국가 대표팀을 응원하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일개 프로농구팀이 '국가대표 대접'을 받을 정도로 캐나다는 NBA 플레이오프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됐다. 최고 인기 종목인 아이스하키 프로팀이 죽을 쑤고 있기 때문이다. 올 시즌 NHL에선 캐나다를 연고로 하는 7개 팀이 모두 플레이오프에 오르지 못했다. 이는 4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토론토 연고의 메이플 리프스도 3년 연속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랩터스는 구단 사상 최다승(56승26패)으로 정규시즌을 동부 콘퍼런스 2위로 마쳤다. 1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는 단 1게임 차였다. 성적 고공 행진에다 아이스하키의 부진으로 인한 반사이익도 겹쳐 정규시즌에 평균 20만명대였던 시청자 수가 플레이오프에는 100만명대로 급증했다. 특히 지난 2일 플레이오프 1라운드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최종 7차전은 역사상 가장 많은 NBA 시청자(153만명)를 TV 앞으로 불러 모았다. 같은 주말 열린 NHL 플레이오프 6경기를 모두 제치고 스포츠 경기 중 시청자 수 1위였다. 야후스포츠는 "정신상담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캐나다 국민이 랩터스에 빠져 있다"는 우스갯소리를 소개했다. 플레이오프 티켓값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미국 경제 전문매체 포브스 발표에 따르면 NBA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던 16개 팀 가운데 1라운드 홈경기 티켓 평균가격이 가장 높은 팀이 랩터스(370달러)였다. 정규시즌 역대 최다승(73승)을 기록하며 화제를 뿌린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3위·평균 270달러)보다도 높다.

캐나다 언론은 농구 인기가 폭발한 요인 분석에 열을 올리고 있다. CBC는 "토론토는 뉴욕 못지않은 인종의 전시장"이라며 "1990년대부터 (농구에 열광하는) 중국계 이민자에게 할인 이벤트를 이어온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역대 NBA 선수가 수십 명에 그쳤던 캐나다지만 지금은 현역 선수가 두 자릿수(11명)로 늘어난 점, 아이스하키·축구에 이어 농구 유소년 선수가 3위로 늘어난 점도 팬층이 넓어진 배경으로 제시됐다.

랩터스는 18일부터 캐벌리어스와 7전 4선승제로 챔피언전 진출을 다툰다. 시즌 상대 전적에선 2승1패로 랩터스가 앞선다. 토론토 거리응원단이 외쳤던 '이겨 주마 르브론(캐벌리어스의 에이스)'이라는 구호대로 랩터스가 또 다른 역사와 열기를 쓸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그래픽] 뛰어오른 티켓값

기고자 : 오유교
본문자수 : 1899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