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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한 병원에서 7년간 안과 의사로 일했던 이모씨의 삶은 지난 1월 송두리째 바뀌었다. 아내 엄모씨가 재미 삼아 했던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가 문제였다. 엄씨가 SNS에 해외 여행을 다녀온 사진 등을 올리자 일부 네티즌이 "엄씨의 화려한 삶은 모두 거짓"이라며 비방을 퍼붓기 시작했다. 며칠 새 수천명이 엄씨의 SNS에 악성 댓글을 달며 괴롭혔다. 남편과 한 살배기 아들 사진에까지 '사기꾼 가족'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SNS에 유포시켰다. 급기야 이씨가 일하는 병원에 협박 전화가 계속 걸려오자 병원장이 퇴사를 권유했다고 한다. 이씨 가족은 현재 강원도에서 은둔하고 있다.

본지가 최근 연재한 '흉기가 된 SNS' 시리즈를 취재하면서 만난 SNS 인격살인 피해자들의 삶 대부분이 비슷했다. 무엇을 잘못했거나 미움 살 만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공격의 대상이 됐다. 서울에 사는 대학생 최모(여·23)씨 역시 올해 초 이유 없이 공격당했다. 누군가 최씨가 과거 SNS에 올린 최씨의 사진에 남성의 성기 사진을 합성해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은 "가짜 정보로 만든 계정이라 피의자 추적이 어렵다"고 했다. 문제의 사진이라도 지워달라고 페이스북 측에 요청했지만 "(자사의) 커뮤니티 규정을 위반하지 않는다"는 이해할 수 없는 답만 돌아왔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최근 다음 달부터 '한국판 잊힐 권리' 가이드라인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가이드라인은 이씨 가족이나 최씨 같은 피해자들을 구제하지 못한다. 본인이 과거 인터넷·SNS에 직접 올린 게시물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가려달라고 인터넷 게시판 관리자 등에게 요구할 수 있을 뿐, 제3자가 악의적으로 올린 게시물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즉각 보호할 장치가 빠져 있다.

몇몇 전문가는 SNS 피해 방지책을 거듭 묻는 기자에게 "애초에 SNS를 하지 않는 게 답"이라고 했다. 하루에 한 번 이상 페이스북에 접속하는 국내 이용자만 1100만명에 이를 만큼 SNS는 우리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존재가 됐다. 그런 SNS를 언제까지 '야만과 광기'가 지배하도록 방치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