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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은 17일부터 아무런 의사 결정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식물 정당'이 됐다. 당 안팎에서는 이날 "(전당대회가 열릴 때까지) 두 달 동안도 당권(黨權)을 내놓고 기다릴 수 없다는 친박계의 욕심이 결국 파국을 불렀다"는 말이 나왔다. 당 상임전국위·전국위를 무산시킨 친박들을 향해 정진석 원내대표 측은 "자폭 테러"라고, 비박계에선 "'양아치'들만도 못한 집단"이라고도 했다. 반면 친박계는 "무리한 인선을 당원들이 거부한 것"이라고 했다.

◇상임전국위·전국위 불발… "정당 아니라 패거리"

상임전국위와 전국위는 이날 오후 1시 20분부터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차례로 개최될 예정이었다. 상임전국위가 혁신위에 전권을 부여하는 당헌 개정안 등을 심의해서 올리면 전국위가 추인·의결하는 순서로 안건이 처리될 계획이었다. 하지만 원유철·홍문종·정희수·윤재옥·김기선 의원 등 친박계 상임전국위원들이 회의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상임전국위원 52명 중 16명만이 출석, 성원 요건(27명 출석)에 미달해 무산됐다. 이날 사회를 맡기로 한 비박계 정두언 의원은 오후 2시 10분쯤 회의실 밖으로 나와 기자들에게 "이건 정당이 아니고 패거리다. 동네 양아치들도 이런 식으론 안 한다"며 "정당 사상 이렇게 명분 없이 말도 안 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은 처음 본다"고 했다. 오후 2시 25분쯤 정진석 원내대표도 굳은 표정으로 회의장을 나왔다.

같은 시각 300여명이 모인 전국위 회의장에서는 고성이 오갔다. 당초 오후 2시에 시작하기로 했으나 상임전국위 무산으로 이 역시 지연됐기 때문이다. 오후 2시 40분 홍문표 사무총장 대행이 전국위 무산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위원들 사이에서 "이러니까 새누리당이 욕먹는 거 아닙니까" "이제 정신 좀 차리십시오" 등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홍 사무총장 대행은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라고 했다.

결국 이날 비대위를 출범시키는 안과 혁신위에 전권을 부여하는 당헌 개정안 처리는 모두 무산됐다. 비대위도, 혁신위도 출범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김용태 혁신위원장 내정자는 오후 3시 10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혁신위원장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그는 친박계를 겨냥해 "그들에게 무릎을 꿇지는 않겠다"며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겠다"고 했다.

◇"비박 비대위 안 돼" vs "친박 자폭 테러"

파국은 전날부터 예고됐다. 친박계 초·재선 20명은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정 원내대표에게 혁신위원장·비대위 인선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정 원내대표는 "친박계 5명을 추가 인선할 수 있다"고 했지만, 친박계에서는 "그것으론 안 된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친박 초·재선들은 상임전국위원과 전국위원들에게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전국위에 참석하지 말라"는 불참 독려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원내대표 측은 이 같은 움직임을 파악하고 출석을 독려하는 전화를 돌렸으나 역부족이었다. 당 사무처에 따르면 상임전국위원 52명 중 29명이 참석 의사를 밝혔지만, 실제 참석 인원은 16명에 그쳤다. 이에 대해 친박계 김태흠 의원은 "보이콧을 준비하지는 않았다"며 "비대위 구성이나 혁신위원장 인선에 문제가 많다고 본 분들이 많아 무산된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수도권 친박 재선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아무리 당이 어려워도 이런 (비박 위주의) 비대위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친박 책임론'을 감수하고 나선 것"이라며 "수긍할 수 있는 사람들로 전면 재조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 같은 친박계의 실력 행사에 정 원내대표 측은 "친박의 자폭 테러로 당이 공중분해됐다"고 했다. 비박계 김성태 의원은 "길어야 두 달 임기인 한시적 비대위를 친박 마음에 안 든다고 좌초시키는 게 말이 되나. 향후 당 지도 체제가 자신(친박)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가지 않을 거라는 우려에 이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라고 했다. 이날 김성태·김학용·이종구·이혜훈 등 비박계 중진 의원·당선자들은 대책회의를 열고 정 원내대표에게 사태 수습을 위한 당선자 총회 소집을 요구했다. 이에 정 원내대표는 "시간을 달라"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고자 : 이옥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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