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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의 역사를, 당신의 추억을 팝니다.'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그림이나 고가(高價) 장식품이 아니다. 녹이 잔뜩 붙은 화장실 표지판, 찌그러진 소파, 지금은 더 이상 쓰지 않는 비디오(VHS) 레코더. 공짜로 준다고 해도 쓰지 않을 것들이다. 하지만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EPL)의 웨스트햄FC는 지난 18일부터 온라인을 통해 이런 잡동사니들을 경매에 부치고 있다. 곧 현실에서 사라질 웨스트햄의 홈구장 '불린 그라운드'(일명 업턴 파크)를 지키던 물건이기 때문이다.

별의별 경매 품목이 다 올라와 있다. 팬들에게 수많은 골맛의 짜릿함을 안겨준 골대와 그물, 코너 플래그는 물론 선수들이 머물던 라커룸의 문짝이나 계단 옆 벽에 붙어있던 철제 봉도 포함됐다. 외부인 출입이 금지된 선수 라운지에서 사용되던 토스터, 샤워기 꼭지도 팔린다.

경매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됐지만 일부 품목에선 호가(呼價) 기세가 심상치 않다. 손때가 묻어 완전히 변색된 2인용 소파는 무려 225파운드(약 40만원)까지 올랐다. 전체 경매 기간이 20일 넘게 이어지기 때문에 앞으로 가격은 더 오를 수 있다. 구단은 이날만 1100여 품목을 경매에 부쳤고, 오는 24일부턴 웨스트햄의 트로피와 각종 사진들이 대상인 2차 경매도 진행한다. 구단과 팬 대표, 은퇴 선수들의 합의를 거친 품목 200여개는 경매 대상에서 제외했다.

웨스트햄이 별안간 경매에 열을 올리는 건 곧 대규모 이사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웨스트햄은 112년간 머물던 불린 그라운드를 떠나, 다음 시즌부턴 약 4㎞ 떨어진 런던올림픽 주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른다. 이미 수년 전 기존 구장(3만5000석)보다 2만석 이상 규모가 크고 주변 교통이 더 좋은 새 집으로의 이사를 준비했다. 불린 그라운드는 조만간 철거될 예정이고 그 자리엔 아파트와 상가 단지가 조성된다.

구단은 어차피 폐기 처분될 물건이라면 이를 원하는 팬들에게 경매에 부치자는 발상의 전환을 했다. 웨스트햄 카렌 브래디 부회장은 "(물건들을) 폐기하기보단 팬들이 각자의 집에 가져가게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팬들의 반응도 좋다. 여러 세대를 지나 기쁨을 안겨준 불린 그라운드와의 작별을 아쉬워했던 그들은 '돈을 내고 버려야 할 물건들'에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한 웨스트햄 팬은 구단 SNS에 "내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의자를 사고 싶다.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박문성 SBS 스포츠 해설위원은 "항상 같은 공간에서 축구를 보고 성장했던 팬들에겐 구단의 역사가 곧 자신의 인생과 다름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별걸 다 갖고 돈벌이를 하려 한다"는 비난도 있다. 하지만 구단은 경매를 통해 얻는 이익이 팀과 팬들에게 환원될 것이라고 한다. 웨스트햄 측은 "경매 수익은 유소년 팀을 강화하는 데 재투자할 것"이라며 "이런 과정을 거쳐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더 많은 팬을 확보해 선순환을 이루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했다. 기고자 : 이순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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