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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일 오후 경북 경산 대구외국어대학교 본관 4층 강의실. 한 어문 계열 수업에 학생 3명이 앉아 있었다. 한 학생은 "어문학부 정원이 60명이 넘는데 실제 학생 수는 40명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사회복지학과 3학년 학생은 "학기마다 자퇴하는 선후배가 많다"고 했다. 캠퍼스엔 4층짜리 건물 2채와 기숙사가 전부다. 운동장도 없고, 강의동 구석 공터에 녹이 슨 농구 골대 하나가 서 있다. 대구외대는 지난해 교육부 대학구조개혁 평가에서 최하위 E등급을 받았다. 정부의 재정 지원이 끊겼다. 지난해 재학생 충원율이 69%로 정원의 30% 이상을 못 채우고 있지만, 올해 이 대학의 입학 정원은 130명으로 4년 전과 똑같다. 대학 관계자는 "아직 모집 요강을 수정하지 못했지만 교육부 권고대로 2018학년도까지는 정원 15%(20명)를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2. 지난 3월 25일 오후, 서울 중앙대 캠퍼스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건물 이곳저곳에 '일방적인 학과 구조 조정에 반대한다'는 벽보가 붙어 있었다. 전날 대학 측이 "학과 구조 조정 방안에 학내 합의가 완료됐다"고 발표한 데 반발한 것이다. 사회과학대 김모(23) 학생은 "우리 학교가 정부 대학 구조 조정 정책의 희생양이 된 느낌"이라며 "멀쩡한 대학의 정원을 왜 자꾸 줄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중앙대는 지난 4년간 대학 특성화 사업 등 교육부 재정 지원 사업에 참여하면서 3번에 걸친 구조 조정으로 입학 정원 126명을 줄였다. 그때마다 학교 구성원 간의 내홍을 겪었다.

◇교육부 "정원 감축 안 하면 돈 안 준다"

중·상위권 대학들이 학내 반발에도 정원 감축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교육부가 집행하는 예산 때문이다. 교육부는 2014년부터 대학 특성화 사업(CK), 학부교육 선도대학(ACE), 산학협력 선도대학(LINC) 등 정부재정지원 사업을 하면서, 대학별 정원 감축 실적을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정원 감축 규모가 클수록 가점을 많이 받는다. 이에 따라 정부평가에서 A등급을 받은 '괜찮은 대학' 34곳이 지난 4년간 평균 정원을 4.11% 줄였다. 예컨대 성균관대는 지난 2014년 특성화 사업에 참여하면서 입학 정원 4% 감축 계획을 내고 정부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았다. 반면 정원을 줄이지 않겠다고 한 고려대와 연세대는 특성화 사업에서 탈락했다.

최근 프라임 사업에서도 교육부는 정원 감축 계획을 제출한 대학에 가산점 3점을 줬다. 사업에 선정된 한 대학 기획처장은 "대학 간 점수 차이가 1~2점밖에 나지 않기 때문에, 가점 3점을 받지 못하면 탈락될 가능성이 컸다"며 "입학 정원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대학 구조개혁의 주 타깃인 부실(不實) 대학은 이를 다 피해갔다.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D등급 대학에 입학 정원을 10%씩 줄이라고 했지만 평균 7.95%를 줄이는 데 그쳤다. E등급 대학은 15% 정원 감축을 권고받았지만 6곳 중 3곳이 아직 한 명도 줄이지 않았다. 한 대학 관계자는 "학생 수가 곧 등록금, 대학 수입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부실 대학들은 정부 지원 안 받고 정원을 유지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정부 평가에서 A·B·C등급을 받은 대학 126곳은 2017학년도 입학 정원을 2013학년도 대비 1만6350명 줄였다. 반면 D·E등급을 받은 부실 대학 32곳은 4228명을 줄였다. 중상위권 대학(A·B·C등급)에서 줄인 인원이 전체 감축 인원의 80%를 차지한다.

◇"6년 안에 12만명을 줄일 수 있을까?"

정부는 지난 2013년 당시 56만명이던 입학 정원을 1단계(2015~2017학년도) 4만명, 2단계(2018~2020학년도) 5만명, 3단계(2021~2023학년도) 7만명 등 순차적으로 총 16만명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그러나 1단계 감축이 마무리된 상황에서 앞으로 남은 정원 감축 계획이 제대로 이뤄질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이미 정원을 줄인 중상위권 대학들(A·B·C등급)은 "줄일 만큼 줄였다"는 입장이고, 부실 대학에 정원 감축을 강제하거나 퇴출시키는 법(대학 구조개혁에 관한 법률안)은 19대 국회에서 폐기됐기 때문이다.

1단계 4년제 대학의 감축 목표는 2만5300명, 전문대 감축 정원은 1만4700명 등 4만명이다. 그런데 실제 이 기간 일반대가 줄인 정원은 1만9930명에 불과해 원래 목표의 78% 수준이다. 전문대는 이 기간 2만1670명을 줄였다. 정부의 1단계 감축 목표 4만명은 간신히 맞췄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다. 당장 내년부터 3년간 5만명을 더 줄이고, 6년 후까지 12만명을 줄여야 한다. 서울의 한 4년제 대학 관계자는 "이제는 정원을 더이상 못 줄인다고 버티는 대학이 꽤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대협의회 관계자도 "1단계 때는 정부 재정지원 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정원을 줄였지만, 추가로 수만 명을 더 줄이는 건 매우 큰 부담"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정부의 2단계 정원 감축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부실 대학에 대해 집중적으로 정원을 줄이거나 퇴출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A~E 등급이란?

교육부가 전국 모든 대학에 대해 전임 교원 확보율, 수업 관리 및 학사 평가, 장학금 지원 등의 항목을 종합 평가해 A~E 등급으로 ‘대학별 성적표’를 낸 것. A등급 대학은 입학 정원 자율 감축 대상이지만 B등급은 4%, C등급 7%, D등급 10% 감축, E등급 15% 감축을 권고한다. D·E등급 대학에는 재정 지원과 신입생 학자금 대출을 제한한다. 하지만 정원 감축은 ‘권고 사항’이라 해당 대학들이 이를 거부해도 강제로 정원을 줄이게 할 방법은 없다.

[그래픽] 대학 정원 대비 대학 입학 예정자 수 / 최근 4년간 대입 정원 감축 비율 / 교육부의 대학 등급별 정원 감축 권고 비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