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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 시절 주말이면 '작업'을 나갔다. 주로 풀을 뜯거나 땅을 팠는데 힘도 들거니와 단순해서 괴로웠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부르던 노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군대에서 무슨 투쟁가냐"고 할까 봐 속으로만 불렀지만 어쨌건 내겐 일종의 '노동요(勞動謠)'였다. 은근히 단순 노동의 지루함을 잊게 해줬기 때문이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임을 위한 행진곡'은 상극(相剋)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파업 현장에선 언제나 그 노래를 불렀다. 나중에는 노동가요도 다양해졌지만 정주영 회장 시절의 파업 현장은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시작하고 끝났다. 그런데 정주영 회장이 만든 국민당 행사에서 1992년 이 노래를 불렀다. 국민당은 그 자리에서 "민자당이 국민당을 탄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애창곡' 중 하나는 '아침 이슬'이었다. 5공 시절 거리에서 반(反)독재 시위대가 부른 그 노래를 노태우 전 대통령이 부르는 모습은 어쩐지 어색했다. 그러나 노래란 원래 그런 것이다. 창작자의 의도나 목적보다는 부르는 사람(수용자)이 재해석하고 재탄생시킨다. 김민기가 만든 '아침 이슬'은 원래 서정적 노래였지 운동권 가요가 아니었다. 그러나 1970년대의 지식인과 대학생들은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라는 가사에 민주화 열망을 담았다. 김민기는 본인 뜻과 상관없이 투사(鬪士)가 됐고, 노래는 금지곡이 됐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임'이 5·18 희생자냐 김정일이냐 하는 논쟁은 부질없다. 창작자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1980년대 이후 이 노래를 불렀던 많은 이가 머릿속에 민주주의를 그렸다. 이 노래가 한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되면서 동남아 일부 국가에서 이 노래를 번안해 민주화 운동 과정에 불렀다. 물론 통진당 일부처럼 딴생각으로 부른 사람도 있었지만 그건 다수가 아니었다.

현 집권층 일부에서 이 노래에 반감을 가질 이유는 충분히 있다. 정치적 반대 세력이 이 노래를 '구분 짓기' 용도로 썼기 때문이다. 애국가 대신 이 노래를 부르면 '우리 편', 아니면 '너희 편'이란 식이다. 2004년 5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152명이 불렀던 그 노래는 누군가에겐 '환희'의 노래였지만, 반대 진영에선 '절망'의 순간이었다. 사려 깊은 정치인들이었다면 그 노래를 청와대에서, 그것도 '승리의 기쁨'에 취해 부르는 오만은 부리지 말아야 했다.

야당이 정권을 잡고 이 노래를 합창에서 제창으로 바꾼다면 갈등이 사라질까. 그러지 않을 것이다. '모두의 노래'가 되는 것은 합창이냐, 제창이냐로 정해질 수 없다. 그보다는 이 노래를 일부 국가의 반체제 세력이 불렀던 것처럼, 김정은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북한 민중이 부르는 미래를 상상해본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남북 주민이 함께 목 놓아 부를 '그날'이 오면 그때는 지금과 달리 '모두의 노래'가 될 수 있을까. 기고자 : 정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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