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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중부 베즐레의 성 막달라 마리아 수도원 교회 출입문 상단에는 '성령강림' 장면이 조각돼 있다. 오순절(五旬節)에 모인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성령을 통해 '방언의 은사'를 받는다. '방언의 은사'란 곧 세계 각지로 흩어져 기독교를 전도할 사도들이 배우지 않은 외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게 되는 기적을 말한다. 반원형 공간인 팀파늄의 한가운데에는 예수가 팔을 벌려 사도들의 머리 위로 빛을 쏘듯 기적을 내리고, 사도들은 성경을 한 권씩 손에 쥐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 채 서 있다. 그 주위에는 전도의 대상인 이교도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제각각 돼지 코나 코끼리 귀, 깃털 등을 가진 기괴한 모습이다. 이토록 끔찍한 형상의 이교도들에게 예수의 말씀을 전하고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이 전도의 사명이라는, 당시 기독교인들의 사고방식이 들어 있다.

그런데 이 조각은 지극히 예외적인 사례다. 흔히 이 시기의 팀파늄에는 최후의 심판을 주재하는 준엄한 예수의 모습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사실 베즐레는 12세기 십자군 운동의 중심지였다. 교황의 명을 받은 성 베르나르도가 1146년, 프랑스 왕을 비롯한 군중이 운집한 자리에서 제2차 십자군 원정을 호소했던 곳이 바로 베즐레였고, 1190년 영국 왕과 프랑스 왕이 만나 제3차 십자군이 출정한 곳도 베즐레였다. 말하자면 베즐레 교회의 '성령강림'은 십자군 원정을 기독교인의 사명으로 선전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요즘엔 세계 어디를 가든 모바일 기기만 있으면 어떤 외국어도 번역되니, 사도들이 손에 쥔 게 성경이 아니라 스마트폰처럼 보일 지경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기적은 외국어 습득이 아니라, 나와 다른 상대의 사고방식을 수용하는 능력일 것이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기고자 : 우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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