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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4일 오전 11시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서울 '만남의 광장'. 휴게소에 진입하는 차량의 절반가량은 앞유리의 짙은 선팅 때문에 10m 앞에서도 운전자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운전석과 조수석의 옆유리 선팅은 앞유리보다 훨씬 더 짙었다. 이 휴게소에 주차된 80여대 가운데 옆유리를 통해 운전석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차량은 거의 없었다.

본지는 이날 경찰청의 협조를 받아 선팅 단속용 계측기로 만남의 광장에 주차된 차량 33대와 서울·경기의 중고차 매매 업체의 차량 등 200대의 선팅 실태를 측정했다. 조사 결과, 법정 기준보다 앞유리 선팅을 짙게 한 차량이 전체의 48%인 96대였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앞유리는 가시광선 투과율이 70%를 넘어야 한다. 10m 앞에 있는 사람이 운전자의 얼굴 윤곽을 구분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 70%다.

운전석 옆유리 선팅이 법정 기준(투과율 40%)보다 짙은 차량은 전체의 92%인 184대였다. 옆유리의 선팅 규정 위반이 앞유리의 거의 2배에 달한 것이다. 가시광선 투과율이 40%인 차량은 4~5m 거리까지 접근해야 겨우 운전자를 식별할 수 있다.

특히 조사 대상 200대 가운데 옆유리 투과율이 신문지(투과율 12.1%)보다 낮은 차량이 18대(9%)나 됐다. 옆유리를 짙게 선팅하면 사이드미러가 잘 안 보이는 부작용이 생긴다. 지난 2013년 부산의 한 초등학교 앞 스쿨존에서 우회전을 하던 40대 운전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초등학생을 들이받아 중상을 입혔다. 이 운전자는 경찰 조사에서 "옆유리 선팅이 너무 짙어서 아이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운전자들이 측면 선팅을 짙게 해도 운전하는데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특히 좌회전이나 우회전 때 발생하는 사고의 상당수가 짙은 선팅 때문"이라고 말했다.

앞유리와 옆유리 선팅 기준을 모두 지킨 차량은 12대(6%)에 불과했다. 조사 대상 200대 가운데 외제차 55대는 모두 선팅 기준을 위반했다. 외제차 운전자인 이모(38)씨 차량은 가시광선 투과율은 앞유리가 34.8%, 옆유리가 10.8%였다. 이씨는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선팅을 했는데 실제 운전을 할 때는 굉장히 불편할 때가 많다"며 "밤에 주차할 때는 짙은 선팅 때문에 사이드미러가 보이지 않아 창문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장택영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차 유리에 규정 이상의 짙은 선팅을 하는 것은 한밤에 진한 선글라스를 끼고 운전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짙은 선팅으로 규정을 위반한 '깜깜이차'는 운전자 본인의 시야를 흐리게 하는 것은 물론 다른 차량과 보행자의 안전도 위협한다. 경찰 관계자는 "선팅이 너무 짙으면 운전자끼리 서로 얼굴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손짓 한 번으로 풀 수 있는 오해가 보복 운전으로 발전하곤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1일 경기도 포천 신북대교에서 두 차량이 서로 "상대가 갑자기 끼어들었다"며 보복 운전을 벌이다 경찰 조사를 받았다. 두 운전자는 모두 "상대 운전자가 미안하다고 손짓만 했어도 뒤쫓아갈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경찰 조사 결과, 두 차량 모두 옆유리가 짙게 선팅돼 있어 바깥에서 차량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짙은 선팅은 경찰의 사고 조사와 처리에도 막대한 지장을 준다. 경기도 과천에 사는 정모(32)씨는 지난 3월 자신의 차량을 들이받고 달아난 뺑소니범을 잡아 달라고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경찰은 사고 현장의 CCTV에 찍힌 번호판을 조회해 용의자를 찾았지만 용의자는 "내가 운전한 것이 아니다"고 버텼다. 경찰은 CCTV 사진을 증거로 제시하려 했지만, 용의자 차량의 선팅이 너무 짙었기 때문에 운전자의 윤곽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지난 2013년 인기 가수 S씨의 옛 여자 친구 윤모(30)씨가 악성 댓글에 시달리다 차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윤씨 차량은 서울 강남 한복판의 주택가에 주차돼 있었지만 시신은 1주일이 지난 후에야 발견됐다. 짙은 선팅 때문에 차량 주변을 지나가던 행인들이 차량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선팅? 틴팅!

선팅은 영어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다. 정확한 표현은 틴팅(tinting)이다. 차량 유리 표면에 얇은 필름을 입혀 빛 투과량을 줄이는 것을 미국에서는 윈도 틴팅이라고 한다. 교통 전문가들은 “선팅은 자동차 유리가 햇볕에 그을려 선탠(suntan)을 한 것 같다는 의미로 한국에서 잘못 쓰이다 굳어진 표현”이라고 추정한다. 조선일보의 이번 시리즈에선 국내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선팅이란 표현을 쓴다.

기고자 : 김석모 김상윤 손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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