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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巨匠) 리카르도 무티(75·사진)는 살아 있는 '전설'이다.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18년간 오페라를 지휘하며 이탈리아 오페라를 세계 정상에 올려놓았다. 지금은 6년째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CSO)를 이끌며 베를린·빈 필에 맞먹는 사운드를 내는 악단으로 키웠다는 평을 듣는다.

무티가 경기도문화의전당(사장 정재훈)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 세계에서 두 번째,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리카르도 무티 아카데미'를 열기 위해서다. 23일 수원에서 만난 무티는 "잠재력 많지만 완벽하진 않아 내 손길이 필요한 젊은 음악도들을 가르치러 왔다"며 "싱싱한 오페라 씨를 한국에 뿌려 향기로운 꽃으로 피워내고 싶다"고 했다.

1985년 방한 이후 그가 한국에 온 건 겨우 네 번. 이번엔 열흘 넘게 머물며 이탈리아 오페라의 본질을 전수할 예정이다. "성악가들이 작곡가의 의도와 전혀 다르게 노래하고 있어요." 아카데미는 그 지점에서 싹텄다. "저는 오페라 지휘를 시작한 때부터 스승인 안토니노 보토(1896~1985)를 종종 찾아뵈었어요. 보토는 토스카니니의 제자였고, 토스카니니는 베르디가 지휘하던 '오텔로'의 첫 공연 때 반주를 해서 베르디가 어떤 소릴 내는지 정확하게 알았지요." 그는 "토스카니니는 베르디가 악보에 명시한 대로 따랐다. 음표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따라야 진짜 오페라가 된다"고 했다.

이번 아카데미에선 오페라의 중심축인 지휘, 성악, 오페라 코치 세 분야에서 무티가 직접 신예들을 뽑아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가르치고, 마지막 날 실전 무대인 콘서트를 연다. 지난 21일 이 데이비드·리앙 장·조민상(지휘), 테너 김승직·안권민·최원진, 소프라노 홍주영·박주현·이정현, 바리톤 이치훈·진솔·최기돈(이상 성악), 김예담·정태양·김민정(오페라 코치) 등 15명을 선발했다. 오는 29일까지 8일간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극장에서 개인지도를 한다. 일반인도 청강권(1일 2만~6만원)을 사면 객석에서 거장의 터치를 볼 수 있다.

한국을 고른 이유를 물으니 소프라노 여지원(36)이 튀어나온다. 무티는 지난해 잘츠부르크 축제에서 무명이던 그녀를 '에르나니' 주역으로 데뷔시켜 찬사를 받았다. "지난주 스톡홀름에서도 그녀와 '맥베스'를 했는데 엄청난 성공을 거뒀어요." 이날 오후 4시, 무티가 총보를 펼치고 앉은 가운데 소프라노 홍주영과 바리톤 최기돈의 수업이 시작됐다. 일흔다섯 지휘자는 손수 노래를 부르면서 '라 트라비아타'의 기쁨, 슬픔, 노여움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사소한 음절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차분히 설명하다가도 가수가 틀리면 발을 탕 구르며 "그만!"을 외치고 덧붙였다. "헤어지라고 강요하는 연인의 아버지한테 대들어야 하는데 너무 부드럽군요."

"대가 혹은 성공한 사람의 최고 경지는 '단순함'임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정재훈 사장의 말이 와닿는 순간이었다.



기고자 : 김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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