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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맘대로 틀어도 괜찮을까.' 여름이 다가오면 가정마다 고민이 시작된다. 자칫 요금 폭탄을 맞을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모 법무 법인의 K 변호사는 4년 전 여름 갓 태어난 아이가 열대야에 고생할까 봐 에어컨을 평소보다 더 틀었다가 한 달 전기료로 21만원을 냈다. 사용량은 기껏해야 2배쯤인데 요금은 4배가 나왔다. 이런 폭탄 고지서가 나온 건 우리 전기 요금 부과 방식이 많이 쓸수록 요금이 비싸지는 누진제를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전기를 펑펑 쓰는 건 죄악이란 사고가 바닥에 깔려 있다.

가정에서 한 달에 55㎾h(저압 기준)를 쓰면 전기 요금은 4250원이 나온다. 이 사용량이 550㎾h, 곧 10배로 늘면? 요금은 17만7020원으로 41배 늘어난다. 한 달 100㎾h 이하 전기를 쓸 때와 500㎾h 이상 쓸 때 ㎾h당 요금이 각각 60.7원과 709.5원으로 11.6배가량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누진제는 일반 가정에만 적용한다. 공장에 들어가는 산업용 전기는 아무리 많이 써도 단일 요금제다. ㎾h당 107원. 게다가 주택용(평균 123원)보다 싸다. 한국전력이 공개한 전력 생산 원가가 ㎾h당 113원이니, 주택용은 원가보다 비싸고 산업용은 원가보다 싸다. 한전이 10대 대기업에 원가보다 싼 값에 전기를 공급해 생긴 적자가 연 1조5000억원에 이른다는 국정감사 자료도 있다.

산업보국(産業報國)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어느 정도 양해할 수 있다. 하지만 가정에서 에어컨 좀 더 쓴다고 전력 대란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식으로 압박하는 것은 아무래도 과하다. 우리 전력 사용량 중 주택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13.6%다. 산업용이 56.6%이고 상인들이 쓰는 일반용 21.4%, 나머지는 학교 등 교육기관에서 쓴다. 가정에서 에어컨 좀 더 쓴다고 해도 전력 대란이 일어나기 어려운 소비 구조다. 2011년 9월 '블랙아웃' 일보 직전까지 갔던 단전(斷電) 사태는 정부가 전력 수요 예측을 제대로 못 하고 원전(原電) 가동을 일시 중단하는 바람에 생긴 소동이었지 가정에서 에어컨 많이 써서 일어난 재앙이 아니었다.

전기 요금 누진제는 1973년 도입됐다. 43년째 이어오고 있지만 불만을 제기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K 변호사는 가만있지 않았다. 현행 가정용 전기 요금 체계는 국민을 부당하게 차별하는 것이라 판단해 한전을 상대로 전기 요금 과다 징수액 반환 소송을 냈다. 현재 600여 가구가 동참했고, 소송에서 이기면 가구마다 적게는 6000원, 많게는 400만원을 돌려받는다. 변론이 다 끝났는데도 법원은 2년째 차일피일 선고를 미루고 있다. 가구당 평균 청구액이 60만원인데 전국 1800만가구가 다 뛰어든다면 소송액은 10조원까지 육박한다.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전기 요금 누진제는 이제 손을 봐야 할 때가 됐다. 전력 자원을 아껴 쓰지 말자는 게 아니다. 부당하고 징벌적인 요금제가 문제인 것이다. 기고자 : 이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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