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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게릴라들] "스마트폰 이용한 로보어드바이저, 투자 유치하려 1000번 넘게 PT(프리젠테이션)"

10억 연봉 박차고 벤처 창업… 에임' 이지혜 대표
    김은정

    발행일 : 2016.05.24 / 경제 B1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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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네 로보어드바이저가 주가지수보다 2~5%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고요? 그것도 수수료를 4분의 1만 받고? 알고리즘(연산 규칙) 다 까서 보여줄 수 있어요? 보여주지도 못한다면서 뭘 믿고 투자하란 건지…. 투자받으러 온 사람 맞아요? 내 시간만 뺏었군요."

    몇 달 전 한 유명 IT 기업 대표 앞에 눈물 닦은 휴지를 놓고 돌아서야 했던 이지혜(37)씨는 다음 달 스마트폰을 이용한 로보어드바이저 투자 자문 서비스 상품을 출시한다. 국내에도 로보어드바이저 자산운용사가 여럿 등장하고 있지만, 은행·증권사를 통해 미리 짜놓은 상품을 대리 판매하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고객의 투자 자문에 직접 응해주는 로보어드바이저는 이씨가 세운 '에임(AIM·Automated Investment Management)이 처음이다. 최소 투자 금액도 500만원으로 통상 1억원부터 받아주는 투자 자문 서비스와는 문턱 높이부터 다르다. 수수료율도 시장 평균(2%)의 4분의 1이 안 되는 0.3~0.5% 수준으로 책정했다.

    '모바일로 누구나 쉽게' '낮은 수수료로' '전문적인 자산 관리를 받을 수 있는' 이 세 가지 원칙을 통해 자산 관리 대중화 시대를 열겠다는 이씨의 발칙한 창업 목표에 대해 대부분은 "취지는 좋지만 한국에서 그게 되겠어?" 하는 반응을 보였다. "지난 1년간 금융위원회 담당자, IT·금융회사 관계자, 벤처 투자자 등을 만나 프레젠테이션만 1000번쯤 했어요. 980번 거절당했고, 20번만 희망적 답을 들었죠. 그 20명이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는 덕분에 스마트폰으로 가입할 수 있는 자문 상품이 최초로 나오게 됐습니다."

    이씨는 사실 한국 땅에서 계란으로 바위 칠 필요가 없는 이력을 쌓았다. 미국 공학 명문인 쿠퍼유니언을 졸업하고 하버드대 계량경제학, 뉴욕대 MBA 과정을 밟았다. 시티그룹 애널리스트, 미국 헤지펀드 아카디언에서 트레이더로 근무하며 10억 가까운 연봉을 받던 '잘나가는 청춘'이었다. 아카디언은 20명이 100조원을 굴리는 막강한 퀀트(계량 분석 금융 기법) 헤지펀드로 유명하다.

    "미국 회사 동료들이 요즘도 메일 보내요. '너 제정신이야? 거기서 뭐하니? 네가 지금 얼마나 엄청난 기회비용을 치르고 있는 줄 아니?'라고요. 알죠. 하지만 에임이 이 판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한국 금융의 테슬라가 되지 말란 법도 없잖아요?"

    에임은 정식 서비스 시작 전인데도 약 2200여 투자자에게서 1140억원을 맡길 의향이 있다는 응답을 들었다. 실제 투자금은 그보다 적겠지만, 예상보다 투자자들 관심이 높다. 스마트폰을 통해 에임에 접속하면 로보어드바이저 프로그램이 투자자의 자산, 연봉, 투자 목표 등을 파악한 뒤 과거 금융시장의 방대한 데이터와 시시각각 변하는 현재 상황을 따져 목표 수익률과 위험 수용도에 맞는 투자 포트폴리오를 제시한다. 국내외에 상장된 2500여 ETF(상장지수펀드)를 특히 포트폴리오에 적극 추천한다. 거래 비용이 싸고 실시간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갈 길은 멀다. 정부가 에임 같은 온라인 투자회사에는 모든 투자 결정 과정에서 투자자에게 최종 허락을 받아야 하는 '자문' 단계까지만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의 전 과정을 로보어드바이저가 알아서 하는 일임 서비스까지 허용해야 진짜 온라인 로보어드바이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에임의 등장에 경쟁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뿐 아니라 기존 증권·자산운용사들도 긴장하는 것은 파격적인 수수료 때문이다. 최근 로보어드바이저 상품 수수료는 1%를 넘는다. 이 대표는 "그간 만난 1000명 중 퇴짜 놓은 980명 말고 '잘 해보라'고 응원해준 20명이 사무실도, 본인 인증 시스템도 무료로 제공해줬어요. 사용료가 연간 수천만원도 더 드는 금융 데이터도 외국 업체로부터 공짜로 제공받아 쓰고 있지요. 이래서 그 수수료를 맞출 수 있어요"라고 귀띔했다.

    그럼에도 벤처의 하루하루는 고난의 연속이다. 퇴직연금으로 그간 직원 6명의 월급을 줬고, 돈이 다 떨어져 지난달 월급은 친동생이 내줬다. "아이디어가 좋아 함께 일하고는 싶지만, 아내가 배고픈 벤처엔 절대 가지 말라고 말린다"며 주말에 몰래 나와 일을 도와주는 전문가들도 있다.

    "국내에서 투자하는 사람은 넓게 잡아도 20%밖에 안 돼요. 그 20%도 비싼 수수료 치르면서 양질의 서비스도 못 받죠. 우리나라 사람들이 만나면 서로 '넌 에임도 안 해?' 하고 묻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

    로봇을 뜻하는 ‘로보(robo)’와 조언자를 의미하는 ‘어드바이저(advisor)’의 합성어. 컴퓨터 알고리즘(연산 방식)을 활용해 개인의 자산 운용을 도와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기고자 :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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