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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란 단어는 언제나 인기가 많다. 그 시절이 낳은 천재 예술가들이 남긴 뛰어난 작품 덕분이다. 그 가운데 이탈리아 화가 라파엘로가 교황 서재 벽면에 그린 '아테네 학당'이 있다. 그리스 철학자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그림인데 라파엘로는 인물들을 모두 이탈리아 사람으로 바꿔놓았다. 이는 당시 이탈리아 문화가 고대 그리스 문화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문화 자부심이 드러난 것이다.

더군다나 라파엘로는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를 그리스 철학자로 만들어서 두 선배 화가를 존경하는 마음을 보여줬다. 자신의 멘토였던 건축가 브라만테의 얼굴도 빼놓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라파엘로는 그림에 자신도 살짝 그려넣어 르네상스 대가들과 자리를 같이한다는 자신감을 은근히 내비쳤다. 그렇다면 라파엘로는 이탈리아의 김홍도가 된다.

김홍도가 살던 시절도 조선 문화가 으뜸이라는 문화 자부심이 가득했던 때이다. 그래서 김홍도는 중국 신선인 동방삭을 동네 아저씨 얼굴로 바꿔 놓았고 인도 스님인 달마를 가까운 절 스님 모습으로 그렸다. 관세음보살은 마을 처녀로, 선재동자는 그 남동생으로 그려내어 이웃집 오누이처럼 친근하게 만들었다. 또한 풍속화에 자신의 모습을 여러번 담아 기품 있는 조선 선비 일상에서 어엿한 주인이 되는 자신감을 보여 주었다.

조선은 처음에 중국을 기준 삼아 따라 했기 때문에 중국풍에 머물렀다. 그러다가 중국풍을 소화하고 나서 조선화시키면서 조선이 문화의 기준이 되었다. 이런 문화 자부심이 아름답게 꽃핀 것이 우리 산천을 화폭에 담은 정선의 진경산수화이고 뒤를 이어 탐스럽게 열매 맺은 것이 김홍도의 인물화이다. 조선 고유한 빛깔을 머금은 것은 그림뿐만이 아니었다. 글씨와 조각, 공예 등 미술 전반에서 모두 그러하였다.

의식주를 서구화한 데 이어 외모까지 서구화로 치닫는 요즘, 김홍도가 동방삭과 달마를 우리 얼굴로 바꿔놓은 자부심을 생각하고 찾아봐야 할 때이다. 그래야만 서양풍을 잘 소화시킬 튼실한 치아와 위장을 갖게 되고 이후 빛깔이 고우면서 깊이 있는 한류(韓流)를 만들 수 있다. 100년, 200년 후에도 살아남을 참된 코리안 스타일(Korean style)을.

탁현규·간송미술관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