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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채식주의자'는 11년 전에 완성했고, 책으로는 9년 전에 출간한 것이다. 런던에서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 그토록 오래전에 쓴 소설로 이토록 먼 곳에서 상을 받다니 참으로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주 영국에서 세계적 문학상인 맨 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46)씨가 24일 서울 홍대 부근 카페에서 취재진 100여명이 몰린 가운데 귀국 이후 첫 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한씨는 "내가 상을 받아서 고맙다고 말씀하신 분들도 계셔서 그 마음을 헤아려 보려고 많이 생각하다 보니 (시상식 이후) 1주일이 벌써 지나갔다"고 말했다.

수상작 '채식주의자'는 육식(肉食)에 얽힌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때문에 채식을 고집한 여성이 나무로 변신하기를 열망하며 자기 파괴의 길을 걷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2007년 처음 출간된 책은 지난해까지 2만부 정도 찍었지만, 영역본이 올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후보로 거론된 뒤 판매량이 급증했다. 창비 출판사는 "17일 수상작 발표 후 25만부를 찍었다"며 "올해에만 44만부 넘게 찍어 총 출간 부수가 46만2000부에 달한다"고 밝혔다. '채식주의자' 영어판은 수상작으로 선정된 직후 영국에서 2만부를 더 찍었다고 한다. 현재 27개국에 저작권이 팔렸다. '채식주의자'에 이어 영역된 한씨의 소설 '소년이 온다'도 10개국 출판사와 저작권 계약을 마쳤다.

한씨는 '채식주의자'를 영역한 데버러 스미스의 작업에 대해 "영역본이 '목소리의 질감'을 중시하는 제 소설을 잘 살렸다"며 "주인공이 악몽을 꾼 뒤 독백하는 장면의 번역을 보곤 마음이 통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지금의 나는 11년 전에 쓴 '채식주의자'에서 던진 질문으로부터 많이 걸어 나왔다"라며 "매번 다른 질문을 던지며 다른 장편을 써왔다"고 했다. '채식주의자' 이후 장편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시간' '소년이 온다'를 낸 것. 한씨는 이날 간담회에서 신작 소설 '흰'(난다출판사)을 선보였다. '흰'은 시(詩)와 산문, 사진이 뒤섞인 이색 소설이다. '흰 것'에 대한 탐구를 다뤘기에 영국에선 내년 가을 'Elegy of Whiteness'란 제목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배내옷과 수의(壽衣), 소금, 눈, 얼음, 백목련, 백지 등등 흰 것에 대한 서정적 단상(斷想)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이다. 한씨는 "더럽힐래야 더럽혀질 수 없는 것들에게 투명함과 생명, 밝음, 빛을 주고 싶었다"며 "형용사 '하얀'이 깨끗함의 느낌만 주는 반면 '흰'에는 배내옷과 수의처럼 삶과 죽음이 모두 들어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한씨는 소설 '흰'을 활용해 미디어 아티스트 차미례씨와 함께 전시회 '소실점'도 6월 3일부터 서울에서 연다. 차씨의 영상 작품과 함께 작가 한씨가 흰 것을 소재로 한 '퍼포먼스'를 펼치는 사진이 전시된다. 한씨는 "언어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뭔가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해서 좋았다"고 밝혔다.

한씨는 "지난해 유일하게 발표한 단편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을 토대로 새 장편을 쓸 것"이라며 "빨리 제 방에 숨어서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독자들에게 "모든 소설을 '대답'이 아닌 '질문'이라고 생각해 읽어본다면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다. 마음을 열어 한국 문학을 많이 읽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고자 : 박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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