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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연휴 마지막 날 순창에 다녀왔다. '순창고추장'으로 성공한 순창이 세계 소스 시장에 도전하려고 기획한 '2016 순창세계소스박람회'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고추장 마을에 마련된 박람회장은 조립식 대형 천막 2개 동(棟)과 캐노피 천막 몇 개가 전부였다. 요즘 열리는 요란한 이벤트형 축제에 비해 무척 단출했다. 하지만 40여 개 부스가 들어선 국내·국외 기업관 분위기는 뜨거웠다. 첫 번째 박람회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순창고추장의 시작도 박람회장을 닮았다. 88올림픽고속도로가 개통(1984년)되면서 판매의 길이 열렸다. 1980년대 중반부터 읍내 고추장 거리에 있던 업체들이 서울의 백화점에 납품하고 우편 판매를 하면서 입소문을 탔다. 1988년 조성된 순창읍 가남농공단지에 입주한 제조업체들이 '순창고추장' 상표를 붙여 판매하면서 상품화가 이루어졌다. 1997년 완공된 지금의 고추장 마을로 읍내의 제조업체들이 이전해오고 장류연구소가 설립되면서 단지(團地)가 만들어졌다. 장류 산업의 메카가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고추장·된장·간장 등을 만드는 장류 산업은 순창 지역 경제의 핵심이다. 지역 총생산액의 56% 정도가 장류 산업에서 나온다. 전체 사업체 고용의 10명 중 1명은 관련 사업체에서 만들어진다. 2014년 기준 제조업 사업체 수의 37%(86개사), 고용의 65%(832명)가 장류 산업 몫이었다. 장류 관련 관광객도 연간 40여만명에 달한다. 고추장 마을은 2004년 전국 제1호 장류 산업 특구가 됐고, 전국적인 관광명소가 됐다. 순창은 전국의 콩과 고추 재배 농가도 먹여 살린다. 순창에 있는 업체들이 메주콩의 40%, 고추의 30% 정도를 순창과 전북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들여오기 때문이다.

누가 이런 성공을 예측했을까. 고추장 마을의 단지화를 처음 계획한 당시 군수와 공무원들이 지금의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읍내에 있던 사업자들도 단지로의 이전에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순창고추장은 짧은 시간에 산업화와 브랜드화에 성공했다. 순창장류연구소 원년 멤버였던 발효미생물산업진흥원 정도연 원장은 고추장이라는 고유한 자원에 전문 인력과 예산 집중이 있어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순창의 성공 바탕에는 고추장의 산업화를 일관되게 추진한 사람들이 있었다. 고추장이 순창의 미래 먹거리라 생각해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특화 단지를 만든 목민관이 있었다. 순창의 민선 군수들은 다른 시·군과 달리 전임자 시책을 폐기하지 않고 지속했다. 고추장 마을을 기반으로 신(新)사업을 추가하고 발전시켰다. 순창군에는 식품 관련 직렬 공무원이 8명이나 있다. 전국 시·군 중 유일무이하다. 이들은 고추장을 장류와 발효 산업으로 확대시킨 전사였다. 순창고추장의 성공은 순창 사람들의 작품이었다.

순창이 매운맛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으려 한다. 박람회는 이를 알리는 출정식이었다. 성공 가능성이 엿보인다. 소스 개발에 필요한 인프라와 노하우가 있고 한류 열풍도 거들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성공 신화를 썼던 사람들이 있다. 순창이 세계인의 식탁에 어떤 소스를 내놓을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이정록 전남대 지리학과 교수 기고자 : 이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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