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3년 만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 보호를 위해 정부가 추진했던 가변형 임시 물막이(키네틱 댐) 설치가 사실상 무산됐다. 24일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의 한 공장에서 기술검증평가단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2차 최종 모형실험에서 암각화를 둘러싸기 위한 투명 물막이판의 연결 부위에서 물이 터져 나와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번 실험은 반구대 암각화를 둘러싸기 위해 제작될 임시 물막이의 투명막이 수압에 견딜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것이었다. 고무재질 개스킷(방수이음재)으로 연결된 투명 물막이판 4개를 직사각형 구조물 안에 넣고 강한 수압으로 물을 분사했을 때 접합부에서 물이 새는지를 검증했다. 하지만 문화재청 관계자는 "개스킷 접합부에 수압을 가하는 과정에서 주변에서 물이 터져 나왔다"고 했다. 기술검증평가단은 조만간 1, 2차 실험 결과에 대한 보고서를 문화재청에 제출할 예정이다. 다음 달 16일 문화재위원회 건축분과가 보고서를 검토해 모형실험의 채택 여부를 결정하지만, 실험이 실패한 이상 물막이 설치 계획이 문화재위를 통과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결국 3년을 허비하고 실험 비용으로 들어간 세금 28억여원만 날린 셈이다.

◇예산 28억 날리고 다시 원점으로

'가변형 임시 물막이'는 정부가 적극 나서서 마련한 중재안이었다. 문화재청과 울산시는 2003년부터 암각화 보존 방법을 두고 갈등을 빚어 왔다. 암각화가 침수되지 않도록 사연댐 수위를 낮춰야 한다는 문화재청과 식수 확보를 위해 생태제방을 쌓아 물길을 돌리자는 울산시 입장이 팽팽히 맞섰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자, 총리실까지 나섰다. 2013년 6월 국무조정실, 문체부, 문화재청, 울산시는 업무협약을 맺고 암각화 주위에 임시 물막이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건축가 함인선씨가 제안한 방안으로, 암각화에서 16~20m 떨어진 지점에 반원형으로 길이 55m, 너비 16~18m, 높이 16m의 보호막을 세운다는 계획. 암각화가 하절기에 물에 잠기는 것을 막으면서도 주변 경관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당시부터 문화재 전문가들은 "급조된 방안일 뿐 효과적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임시 시설물이 암각화와 주변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고, 울퉁불퉁한 절벽에 물막이의 양쪽 끝부분을 완벽하게 밀착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결국 기술검증평가단을 구성해 지난해 12월부터 3차례 모형실험을 실시한 결과, 최종 실패로 끝났다.

◇대안은 없나

울산시와 문화재청은 예전 주장을 다시 꺼내 들려는 모양새다. 울산시는 식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깨끗한 상수원인 대곡천 물을 포기할 수 없다며 암각화 보존 방안으로 생태제방을 주장해왔다. 생태제방은 암각화 전방 80m 지점에 둑을 쌓아 대곡천 물이 암각화 앞으로 지나가지 못하도록 한다는 계획. 하지만 이미 2009년과 2011년 문화재위원회에 상정했다가 모두 부결된 바 있다.

문화재청은 일단 사연댐에 수문을 설치해 수위를 낮추고 부족한 식수는 주변 지역에서 물을 끌어와 해결하자는 입장이다. 일각에선 "울산 대암댐을 식수용으로 용도 전환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대암댐은 지금 낙동강 물을 퍼서 올려 공업용수로 쓰고 있는데 낙동강 물을 퍼서 올리지 말고 순수하게 댐으로 유입되는 물만 식수로 전환하면 하루 5만t 정도 맑은 물 확보가 가능하다. 각계 합의만 이뤄진다면 얼마든지 실현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기고자 : 허윤희
본문자수 : 1764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