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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독일로 간 백의의 천사'… 50년의 위대한 여정

    조규형

    발행일 : 2016.05.27 / 여론/독자 A35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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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오십시요. 서독(西獨) 후랑꾸후루도에'.

    1966년 1월 31일. 짙은 잿빛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자욱한 안개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독일의 전형적인 겨울, 한국에서 파견된 '백의의 천사' 128명이 고단한 여정 끝에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비록 어법과 표기법에는 안 맞지만 환영 플래카드가 내걸린 공항은 이들을 맞는 인파로 북적였다. '한국 간호사·간호조무사의 서독 취업 이주 사업'이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이를 계기로 하여 1976년까지 10년 동안 1만1057명의 대한민국 간호사·간호조무사가 독일 땅을 밟았다. 프랑크푸르트 황제홀에 도착해 시에서 마련한 환영식에 한복을 입고 참가, 아리랑과 애국가를 불렀다.

    이들이 고향을 떠나 낯선 독일 땅을 밟은 이유는 오로지 돈이었다. 6·25 전쟁을 겪은 대한민국은 국가 재건을 위해 외화가 절실했다. 당시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은 고작 76달러. 태국이 220달러였고, 필리핀이 170달러였으며 한국의 간호사들이 독일에서 받을 월급은 초급 공무원의 연봉과 비슷했다고 한다. 말은 통하지 않고 자기 체격의 두 배나 되는 서양 환자들을 간호하는 고된 일과 속에서도 이들은 고향의 부모님에게 집 한 칸 마련해 주고 형제들 공부시킨다는 일념으로 3년의 세월을 견뎠다.

    파독(派獨) 간호사·간호조무사들은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실함으로 병원 관계자와 환자는 물론, 독일 사회에서 커다란 신뢰를 얻었고 '민간 외교관 역할'까지 했다.

    올해는 독일로 간호사·간호조무사를 보낸 지 50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프랑크푸르트시청 황제홀에서 파독 5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50년 전 당시 프랑크푸르트 시장이 간호사·간호조무사를 맞이하는 자리에서 "50년 후 다시 환영 리셉션을 열어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킨 것이다. 지난 21일 '파독 간호사 50주년 기념식'이 독일 에센시(市) 광산회관에서 열리기도 했다. 현재 독일에 남아 있는 파독 간호사·간호조무사는 2500명으로 추정된다. 23일에는 이들 중 독일에 거주하는 27명이 7박 9일의 일정으로 귀국해 연극 '베를린에서 온 편지'를 공연했다. 50년 전 독일 땅을 밟은 젊은 처녀들은 이제 반백의 할머니가 되어 우리 앞에 섰다.

    지난 1월 말 마지막 파독 간호사 김금선(65)씨가 간호사로서는 가장 늦게 정년퇴직을 하면서 그 역사는 마침표를 찍었다. 3년 계약이 끝나면 고향 땅을 다시 밟겠다는 애초의 계획과 달리 많은 분이 독일이나 다른 나라에 터전을 잡았다. 힘겨웠던 시절 조국 근대화의 거름이 되었던 그들의 희생과 헌신은 이제 역사로 남게 됐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다. 이역만리에서 언어 장벽과 외로움을 견디며 묵묵히 환자를 돌봤던 '독일로 간 백의의 천사들'. 이들이 남몰래 흘린 눈물과 고달팠던 삶의 여정은 조국이 가난을 딛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 선구적 역할을 해주었다. 독일 파견 50년을 맞아 이들 '파독 간호사·간호조무사'들의 노력이 한국 여성사에 힘찬 획을 그었음을 기억하자. 그들의 노고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귀중한 한 페이지로 기록되어야 한다.

    조규형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기고자 : 조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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