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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식 칼럼] 이명박 前 대통령을 왜 써먹지 않나

    최보식

    발행일 : 2016.05.27 / 여론/독자 A34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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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은 순방 귀국 후, 이번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나야 한다. 취임 후 한 번도 MB를 청와대에 초대한 적이 없다. 서로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세상이 다 안다. 하지만 누가 원인 제공자인지를 더 이상 따질 때가 아니다.

    마음에 없는 사적(私的)인 화해를 주문하는 게 아니다. 국익을 위해, 대통령직 수행을 위해 '업무상' 그를 꼭 만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속된 말로 MB를 써먹으라는 거다. 못 써먹으면 박 대통령의 손해일 뿐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MB는 5년간 국정 운영을 해봤다. 성공만이 아닌 오류와 실패 사례에서도 내공(內功)이 축적됐을 것이다. 이런 국정 경험은 개인 것이 아니고 국가 자산이다. 개인 MB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국가 자산을 사장할 수는 없다.

    사석에서 MB 정권 때 대통령실장을 지낸 한 인사는 사소할 수도 있는 청와대 선물 얘기를 들려줬다.

    "방한한 부시 대통령이 떠날 때 MB는 선물로 트레이닝복과 운동화를 줬다. 금박 거북선 등 전통 공예품을 선물하던 관례와 달랐다. 미국 대통령은 일정 액수 이상의 선물을 받으면 국고(國庫)로 귀속되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 오바마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는 태권도복과 자전거를 선물했다. 사전에 오바마의 취향 조사를 철저히 한 뒤 국고에 귀속 안 될 실질적 선물을 골랐다. MB 재임 시절 오바마는 세 번이나 청와대를 방문했다."

    이런 사소한 노하우가 작용해서만은 아니겠지만, 역대 어느 정부보다 이명박 정부 때 한·미 관계가 좋았던 게 사실이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 정당 대표들과 정례 회동을 하겠다"면서 왜 MB에게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는지 모르겠다. 어떤 참모나 책사(策士)보다 더 훌륭한 조언을 얻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더욱이 MB는 같은 보수 정권의 전임자다. 그를 초대해 자리를 같이하는 모습만으로 국민은 고개를 끄덕거릴 것이다. 박 대통령의 지지 기반은 더 넓어질 수 있다. 어쩌면 분열된 새누리당을 통합하는 데도 얼마간 효과가 있을 것이다.

    5년 단임제에서 대통령이 제대로 일을 배워 해보려면 레임덕을 맞는 게 현실이다. 지금 박 대통령이 이를 절감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전임 대통령의 경험을 미리 참고했다면 불필요한 시행착오와 낭비를 훨씬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역대 정권마다 스스로를 '하늘에서 뚝 떨어진 정권'으로 여기는 공통점이 있다. 저마다 전(前) 정권과 차별화하는 데만 과잉 의욕을 보인다. 전임 대통령은 경계 대상이고, 전임자가 해놓은 것은 일단 뒤엎는다. 단절된 상태를 만들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그러니 5년 임기로는 무엇 하나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대통령은 결국 재임 기간의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업적을 내기 위해 쓸 수 있는 인재를 다 끌어 써야 하는 게 대통령이다. 그런데 바로 곁의 최고 국가 자산만은 내팽개치고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MB에게 경제 분야의 특별 자문역이나 대통령 특사 역할을 과감하게 맡기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그에게 국가를 위해 좀 더 봉사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면 이는 대통령의 성공이 된다.

    역대 정권을 보면 현직에 의한 전임 대통령의 수난사(受難史)다. 헌정 사상 첫 단임(單任)을 실천했던 전두환 대통령은 58세에 청와대를 나왔다. 손 털고 뒷방 늙은이 하기에는 너무 일렀다. 그는 퇴임 후 자기 나름대로 역할을 해보려고 '국가 원로 자문회의'를 구상했다가, 친구인 노태우 6공(共) 정부에서 백담사행(行)을 맞았다. 그 뒤 6공과 손잡고 보수 정권을 재창출한 김영삼 대통령은 전임자들을 감옥에 보냈다.

    역설적이게도 보수 정권의 전임 대통령들이 청와대에 초대된 것은 수평적 정권 교체가 이뤄진 김대중 대통령 때였다. DJ는 매년 분기마다 자리를 만들어 전임자들의 의견을 구했다. 노무현 정부 때도 전임 대통령들을 초대한 적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전임자를 잘 모시는 전통을 만들겠다"고 말했지만, 전임인 노 전 대통령은 자살을 선택했다.

    물론 전임자의 태도도 중요하다. 현직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해 야당이나 언론처럼 시비해서는 안 된다. 특정 정파의 수장(首長)으로서 정치 발언을 하며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도 민망한 짓이다. 지미 카터처럼 직접 망치를 들고 집 짓는 해비타트 운동 같은 봉사 활동도 좋겠지만 우리 상황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다. MB는 퇴임하면서 "손자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까 한다"고 말했지만 막상 그렇게 시간을 보낼 수도 없는 것이다.

    대통령 자리는 취임하는 순간 시한부(時限附)다. 박 대통령도 청와대를 걸어 나갈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은퇴자로 살기에는 아직 젊고 국정 경험은 소중하다. 이제 박 대통령이 전임자 활용 선례를 만들어야 한다. 마음에 안 들어도 MB를 써먹어라. 본인과 국가를 위한 것이다.

    기고자 : 최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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