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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편지] 50년 만에 모인 초등 동기 60명의 1박2일

    김치호

    발행일 : 2016.05.27 / 여론/독자 A33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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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말 1박2일 일정으로 초등학교 동기회가 시골 고향에서 열렸다. 새벽부터 들떠 서두르는 나를 보고 안식구는 "환갑·진갑 다 지난 중늙은이들이 무슨 사고를 치려고…" 하며 혀를 찼다. 하지만 내 마음은 벌써 경남 밀양 하남들 교정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60명 가까운 동기가 참석했다. 카톡방의 소통력도 한몫했다. 큰 수술 후 정양 중인 정자가 함양에서 오고, 희자는 집안 혼사 일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달려왔다. 130여명 졸업생 가운데 이미 20명 넘게 세상을 뜬 데다, 상당수는 소식이 끊겼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으니 사실상 전국에 흩어진 동기가 거의 모인 셈이다.

    토요일 점심, 친구들이 하나둘 도착할 때마다 다들 반가움에 손잡고 껴안았다. 혹시 알아보지 못할까봐 이름과 살던 동네를 적은 목걸이도 준비했으나 괜한 일이었다. 모임은 먼저 간 친구들의 명복을 비는 묵념에 이어 교가를 부르며 시작됐다. 그러나 그런 엄숙한 분위기는 한순간이고, 곧 끼리끼리 떠들고 노래하고 춤추는 한바탕 봄날 축제로 바뀌었다. 펜션을 통째로 빌리고, 푸짐한 먹을거리에다 읍내에서 노래방 기기와 연주자까지 모셔왔다.

    한편에서는 가물가물한 기억을 맞추어가며 옛날 사건들의 전말(顚末)을 복원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잘못으로 선생님한테 호되게 혼난 이야기, 누가 누구를 좋아했다는 이야기, 교실에서 오줌 싼 친구 이야기로 깔깔대며 배꼽을 잡았다. 희숙이가 죽기 전에 나를 한번 보고 싶었다고 고백(?)해 웃음보가 터졌고, 부산에서 초등학교 교장으로 있는 은자는 나에게 맞았던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다고 분해하며 해명하라고 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는 얼핏 꿈을 꾸는 듯 열한 살 개구쟁이가 되어 여학생들이 노는 고무줄을 끊고 달아나고 있었다. 선생님한테 불려가 벌을 서는데, 뒷집 재순이 소리에 놀라 눈을 떠보니 그녀는 음악에 맞춰 상천이와 흥겹게 스텝을 밟고 있었다. 오후 일정은 한때 가수 꿈을 키웠던 두녀가 내 신청곡인 이미자의 '빙점'을 부른 뒤 '고향의 봄'을 합창하는 것으로 끝났다. 해 넘어가기 전에 단체 사진 찍고 쉬자는데 그걸 못 참고 현규가 '오빠 생각'을 부르며 손수건 돌리기를 시작한다. 60대 초로가 아닌, 50년 전의 열두어 살 소년·소녀 딱 그 모습이었다. 저녁 프로그램은 8시에 시작돼 밤새 이어졌다. 다들 목이 쉬어라 노래하고 몸을 흔들었다. 초저녁부터 곯아떨어진 친구들이 깨면서 판을 새벽까지 이끌었고, 남학생보다 여학생들이 에너지가 충만했다.

    오월 봄날 밤은 짧아 해는 일찍 떠올랐다. 전날 끓여놓은 오리백숙으로 속을 풀면서 점덕이의 걸쭉한 입담에 깔깔대면서도 헤어질 시간이 다가옴을 아쉬워했다. 오전 10시, 22시간 축제는 끝났다.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길 빌며 헤어졌다. 금자가 먼저 떠나는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자 울컥해졌다. 1박2일 오월 봄날의 축제, 60대 초로들이 저지른 생산적인 신명풀이이자 건강한 일탈이었다.

    김치호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기고자 : 김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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