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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地번호 못 잊어… 통일 이뤄 시신 찾을 것"

강원 태백중학교 학도병 126명, 1951년 자원입대해 특공대로 활약
    전현석

    발행일 : 2016.05.27 / 사람 A25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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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생 126명과 수학 교사가 펜 대신 총을 들고 최전선에서 싸웠다. 특공대로 뽑혀 북한 인민군 복장을 하고 적진에서 게릴라전(戰)을 펼치기도 했다. 6·25에 참전한 강원 태백중학교 학도병 얘기다.

    1951년 1·4 후퇴 소식을 들은 태백중학교 학생들은 6·25 직후 북한군 강제 징집을 피해 산속에서 생활했던 게 떠올라 술렁거렸다. 당시 학도병이었던 이영도(82)씨는 "이번엔 짐승같이 숨어 지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우리 고장을 우리 손으로 지키기 위해 단체로 학도병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126명이 자원입대를 결심했다. 남녀 공학이었던 태백중학교의 당시 전교생은 300여명. 여학생과 피란을 떠난 학생을 제외한 대부분 남학생이 거의 다 모였다고 한다. 수학을 가르치던 박효칠 교사도 "학생이 있는 곳에 선생이 있어야 한다"며 합류했다. 평안남도 출신인 그는 신의주제일공업학교 학생회장이던 1945년 11월 소련과 김일성에 맞서 반공학생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들은 한겨울 수십㎞를 걸어가 경북 봉화군의 육군 제3사단 제23연대 본부에 도착했다. 연대장은 "20세 이하 학생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절했으나 학생들이 키와 나이를 계속 속이며 입대를 끈질기게 요청하자 허락했다고 한다. 동상에 걸려 귀향한 이들을 제외하고 124명 전원이 신체검사에 합격해 학도병이 됐다. 부대 명칭은 '학도중대'였다.

    이들은 5일간 기초 군사훈련을 받고 1월 20일 최전선에 투입됐다. 전투복 대신 교복을 입고 싸웠다. 그해 6월 군번을 받고 정식 군인이 되면서 박격포 부대로 개편됐다. 이영도씨에게 어디서 싸웠는지 묻자 숫자를 열거했다. "748, 949, 973, 662, 529…. 우리가 싸웠던 고지 번호입니다. 동창이자 전우들이 피 흘린 곳으로 평생 잊지 못할 숫자들이죠."

    태백중 학도병들은 1951년 영월 녹전지구(1월 26일), 인제 상탑지구(5월 16일), 간성 쑥고개(7월 13일) 전투, 1952년 748·949고지 탈환(2월 3일), 1953년 가칠봉·748고지(2월 2일), 김화지구(5월 30일) 전투 등에서 공을 세웠다. 127명 중 18명이 전사했다. 2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16명의 시신은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한다. 생존한 학도병들은 '화백회'를 만들고 산화한 전우들을 기리기 위해 1954년부터 추모제를 거행하고 있다.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은 다음 달 1일 태백중에서 열리는 63회 추모제에 참석한다. 역대 육군참모총장 중 처음 있는 일이다. 장 총장은 127명과 태백중 출신 6·25 참전자 43명 등 170명의 군번과 이름이 새겨진 명패를 학교에 증정한다. 육군 36사단 공병대대는 학도병 고(故) 신병락씨의 아내 김운희(80) 여사의 집을 신축하는 공사를 해왔는데 이날 준공식도 열 예정이다.

    이영도씨는 "현재 학도병 중 40여명만 생존해 있다"며 "어서 빨리 통일이 돼 이름 모를 고지에 묻혀 있을 전우들 시신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기고자 : 전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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