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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곡성(哭聲)은 전남 곡성(谷城) 침곡마을에서 찍었다. 지리산 기슭, 산굽이가 내려다보이고 섬진강과 보성강이 만나 물굽이 치는 곳에 곡성이 자리 잡고 있다. 아름답기로 곡성만 한 땅이 또 있을까. 강이 머물며 만들어낸 습지에 꿈꾸듯 물안개 피어오르고 하늘빛 품은 섬진강변으로는 찻길, 자전거길, 숲길이 겹겹으로 이어진다. 섬진강변 국도 17호선과 전라선 철도가 어우러진 풍광(風光)도 곡성의 자부심이다.

이처럼 산수 빼어난 곡성에 요즘 장미향(香)이 물결치고, 사람들 북적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기자는 25일 오후 곡성군 곡성읍 기차마을 장미공원을 찾았다.

"이슬 맺힌 장미가 뿜어내는 향기가 너무 좋았어요. 바람에 실려 오는 향은 더 좋네요." 경북 포항에서 왔다는 이명도(55)씨는 "이렇게 장미가 많을 줄 몰랐다"며 '너무 좋다'는 말을 연발했다. 정수연(42·경기도 수원시)씨는 "영화에 나오는 곡성에 간다고 생각하니 반가운 마음이 들더라"고 했다. 공원에 전시된 장미는 1004품종, 3만7000여 그루에 이른다. 피어난 꽃봉오리가 몇인지 헤아릴 수 없다.

장미공원에서 열린 세계 장미 축제가 대박을 쳤다. 축제 첫날인 지난 20일 행사에서 노래를 부른 가수 '수와진'은 축제를 찾은 인파에 떠밀려 행사장에 들어가지 못할 뻔했다. 곡성 주변은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곡성IC부터 창평IC까지 차량이 꼬리를 물었다. 29일 마감한 축제 방문객은 곡성 인구(3만600명)의 약 7배가 넘는다. 곡곡(曲曲)에 즐거운 비명이 메아리쳤다.

곡성은 전라남도에서 가장 산지(山地) 비율이 높고 평균 고도(高度)가 500m에 달해 제일 높은 지역이다. 그래서 오지(奧地)라고 했다. 농지는 그만큼 적다. 곡성이 내세울 수 있는 기업은 금호타이어 공장 하나다. 산업 기반이 열악하기 짝이 없는 이곳에서 철도 일부가 폐선로(廢線路)로 변했다. 곡성읍 내 분지(盆地)를 지나는 전라선을 반듯하게 다시 깔고 나니 폐선 구간이 17.9㎞ 생긴 것이다.

곡성은 바로 여기를 주목했다. 1999년부터 '관광객을 끌어들여 군민들의 살림살이에 도움을 주자'는 취지로 기차마을 사업을 시작했다. 폐선 구간에서 증기기관차를 달리게 하고, 레일바이크가 움직이도록 했다. 이곳에 카페, 펜션도 들여 관광객 입소문을 타게했다. 곡성군은 기차마을 사업을 전담하는 공무원 팀을 별도로 만들었고, 부족한 예산은 정부가 지원했다. 곡성 기차마을은 그렇게 곡성을 바깥세상에 알린 시발점이 됐다.

곡성군 공무원과 군민들이 정성 들여 조성한 기차마을에 2011년부터 장미가 피어오르고 장미축제가 시작됐다. 주변 지역에선 장미축제의 성공을 놓고 전남 22개 시·군 가운데 인구는 아래에서 둘째, 재정 자립도(7.44%)는 13위에 불과한 작은 지자체가 일궈낸 '작은 기적'이라고 말한다. 장미축제장에서 직접 벌어들인 소득이 10억원을 넘고, 축제의 경제적 파급 효과는 그 열 곱절이 넘을 것이라는 추산이 나오고 있다.

'뜨는 곡성'에는 류근기 군수가 '발상의 전환'을 강조한 것도 한몫했다. 류 군수는 "어두운 인상을 주는 영화 '곡성'이 군(郡) 이미지를 해칠 수 있다"고 일부에서 걱정하자 "역발상으로 곡성을 전국에 알리는 계기로 삼자"며 반전(反轉)시켰다. 지리산과 섬진강이라는 빼어난 자연환경을 자산(資産)으로 삼아 친환경 고품질 농·축산업을 키우고, 사람들이 찾아와 머물고 가는 체류형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것이 곡성의 목표다. 이순만 곡성군 기차마을 사업팀장은 "섬진강, 기차마을 외에도 가정마을 아래쪽 압록과 보성강변도 가꿔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박정하 곡성신문 대표는 "관광객이 곡성을 찾아온 경제적 파급 효과를 군 전역으로 확산하고 지속시키는 게 숙제"라고 말했다.

[그래픽] 전남 곡성 위치도 / 전라선 폐선 구간 재단장 위치

기고자 : 권경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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