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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현지 시각) 제1차 세계대전 최악의 전투였던 베르됭(Verdun) 전투 100주년 기념식이 열린 프랑스 북동부 베르됭시 두오몽 납골당. 기념식에 참석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시종 엄숙한 표정이었다.

두 정상은 무명의 양국 전사자 13만명이 합장돼 있는 납골당의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에 점화한 뒤 손을 맞잡았다. 32년 전인 1984년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과 헬무트 콜 서독 총리가 이곳에서 손을 잡아 양국 화해의 상징으로 떠올랐던 장면을 연상케 했다. 메르켈 총리는 그때를 언급하며 "프랑스와 독일은 이곳에서 화해했고, 우리는 친구가 됐다"고 했다. 그는 "이곳에 묻힌 장병들은 과거 유럽이 빠졌던 편견과 국수주의, 맹목과 정치적 실패의 희생자들"이라며 "20세기 재앙이 준 교훈을 가슴 깊이 새기는 것만이 이들을 추모하는 가장 좋은 길"이라고 했다.

양국 정상은 이날 오전 독일군 1만1000여 명이 매장돼 있는 묘지 방문을 시작으로 온종일 일정을 함께했다. BBC는 "두 정상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양국 어린이 4명과 함께 독일군 묘지에 헌화했고, 우산을 나눠 쓰고 주변을 걸으며 대화를 나눴다"고 보도했다.

이날 기념식은 유럽의 분열과 갈등이 불러온 전쟁의 참상을 재현하는 공연으로 시작됐다. 장엄한 북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양국 청소년 4000여 명이 한꺼번에 묘지 중간으로 달려나와 쓰러졌다가 일어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전쟁터에서 숨진 군인들의 모습과 이들이 희망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평화와 화해의 염원을 담아 하얀 풍선을 하늘로 날려보내는 행사도 열렸다.

베르됭 전투는 1916년 2월 독일군 공격으로 시작돼 그해 12월까지 10개월가량 계속된 1차 세계대전 최장의 전투였다. 300일 넘게 싸우는 동안 프랑스군 16만3000여 명과 독일군 14만3000여 명 등 30만명 이상이 전사했다. 부상자·실종자를 포함한 희생자는 양국을 합쳐 80만명이 넘는다. 당시 발사된 포탄은 6000만발에 달했고, 이 중 4분의 1가량인 1500만발이 터지지 않아 지금도 남아 있다. AFP 등 외신은 "이 지역은 아직도 불발탄이 많아 주거와 농사 등이 금지돼 있다"고 했다.

두 정상은 이 현장에서 난민 사태와 테러리즘, 극단주의 등 유럽이 당면한 위기에 대해 경계의 목소리를 높였다. 올랑드 대통령은 "지금 유럽에 분열과 폐쇄, 고립의 세력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공포를 일구고 증오를 주입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두 정상은 "유럽의 임무와 역할은 테러리즘과 광신주의, 급진주의에 맞서 싸우는 것"이라며 "시리아 등 대량 학살이 이뤄지는 곳을 피해 온 난민들을 따뜻하게 맞아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국 정상이 이날 행사에 나선 것은 유럽 정세가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오스트리아·독일·프랑스 등에서 실시된 주요 선거에서는 극우 정당이 약진하고, 중도 좌우 진영이 크게 위축됐다. 올랑드 대통령도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지만 극우 정당 국민전선(FN) 마린 르펜 대표에게 밀려 결선에도 오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독일 메르켈 총리도 내년 총선에서 극우세력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거센 도전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의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 등 유럽의 분열 움직임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있었다. 올랑드 대통령은 "우리는 유럽이라는 공동의 집을 지켜야 한다. 그게 없으면 (전쟁으로 점철된) 역사의 폭풍우에 노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도 "21세기 유럽이 당면한 도전은 우리가 함께 손을 잡아야만 뚫고 나갈 수 있다"며 "유럽 각국이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문을 열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픽] 베르됭(Verdun) 전투 기고자 : 장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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