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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오후 7시 서대문구립 이진아기념도서관(이하 이진아도서관) 지하 1층 다목적실. 수강생 60여명이 송병건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의 '그림으로 경제사 읽기' 강의를 듣고 있었다. 이들은 송 교수가 18세기 영국의 풍자 만화가로 이름난 제임스 길레이의 풍자 그림과 마르코 폴로가 쓴 동방견문록의 삽화를 보여주며 시대적 의미를 설명하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 안에 있는 이진아도서관은 '작은 대학'이다. 개관 3주년을 맞은 2008년부터 현직 대학교수와 학자들이 도서관 이용객들에게 다양한 주제로 인문학 강연을 하고 있다. 2014년 시작한 '똑똑똑 인문학'의 강연자는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과 연세대 언어정보연구원의 HK(인문한국) 교수들이다.

작년에 '철학적으로 사유하기' '문학속 장소들'이라는 주제로 두 달간 이어졌던 강좌엔 400명 정원이 모두 찼다. 도서관 이용 주민 장경애(여·66)씨는 "여기서 강연을 듣다 보면 대학 시절 기억이 떠오른다"면서 "올가을에 개설되는 강좌도 들으려 한다"고 말했다.

◇지역 지식 공동체이자 문화 시설

직장인을 위해 오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진행되는 '퇴근길 인문학'은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1만2357명이 수강했다. 올해는 지난 3월부터 매주 화요일 오후 7시부터 두 시간씩 안톤 체호프, 막심 고리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등 러시아 문호들의 삶과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강의가 열리고 있다. 매주 수요일엔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존 스타인벡의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 오에 겐자부로의 '말의 정의' 등 논픽션 명작이 다룬 핵심 주제를 살펴본다. '퇴근길 인문학'을 비롯해 일부 인문학 강좌에는 1회당 7500원~1만원 수강료가 있는데도 인기라고 한다. 도서관이 매년 구입하는 책 8000~9000권 중 70% 정도가 문학·사회·철학 서적이다.

이진아도서관 2층 도예 공방엔 전기물레 10대와 손물레 17대가 있다. 주민들은 도예 수업을 들으며 도자기를 만든다. 이렇게 만든 도자기로 1년에 한 번 인사동에서 작품 전시회를 열고 판매도 한다. 3층 '무한 상상실'엔 영상 편집이 가능한 데스크톱과 3D 프린터가 있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UCC나 전자책을 제작하고 3D 프린트 제작법을 익힌다. 이정수(여·53) 관장은 "이곳은 지식 공동체이자, 문화 체험장"이라고 소개했다.

◇공공 도서관 운영의 모범 사례

이진아도서관은 5년째 매주 수요일에 임신부, 장애인 등 도서관에 오기 힘든 사람들을 위한 책 배달을 하고 있다. 지난해 임신부 32명에게 600권, 장애인 7명에게 100권을 차량으로 가져다 줬다. 도서관 2층에 마련된 다문화 자료실에는 다문화 가정을 위해 영어, 중국어, 태국어, 인도네시아어, 베트남어 등 여러 언어로 된 도서 3755권이 비치돼 있다.

설립 배경뿐 아니라 운영 방침과 프로그램도 남다른 이진아도서관은 그동안 공공도서관을 대상으로 한 전국 도서관 운영 평가에서 국무총리상 2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2회, 특별상 1회 수상을 했다. 개관 10주년이었던 작년 이용자 수(67만3155명)는 서대문구 인구수(31만2141명·2015년 12월 기준)의 두 배가 넘는다. 명예관장인 고 이진아씨의 아버지 이상철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도서관을 짓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민간 기부로 만든 이진아도서관]

죽은 딸 기리기 위해 50억 기증

전국 최초로 민간 기부에 의해 세워진 공공 도서관. 의류 수출 업체인 현진어패럴 대표 이상철(69·전 경기고 동창회장)씨가 2003년 미국 어학연수 도중 숨진 딸 진아(당시 23세)씨를 기리기 위해 50억원을 서대문구에 도서관 건립비로 기증했다. 서대문구청은 2005년 공사를 마치고 이진아씨의 25번째 생일인 9월 15일에 맞춰 개관했다.

[그래픽] 이진아기념 도서관 위치도 기고자 : 안상현
본문자수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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