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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보수당 '하나의 국민' 통합정신, 한국 보수도 배워야"

'정당의 생명력: 영국 보수당' 펴낸 박지향 서울대 교수
    이선민

    발행일 : 2017.01.06 / 문화 A21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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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보수당이 세계 정치사에 드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변화에 적절하게 대처했기 때문이다. 보수당은 곡물법, 아일랜드 문제, 대영제국 존폐 등 영국사를 뒤흔든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쟁점에 끌려가지 않고 선도적으로 이끌었다."

    영국사 전문가인 박지향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가 영국 보수당의 이념과 역사를 정리한 '정당의 생명력: 영국 보수당'(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을 펴냈다. 이 책은 영국 보수당의 이념적 분파, 불평등·계급·젠더와 영국 보수당의 관계를 살펴본 뒤 1830년대 이후 영국 보수당의 주요 사건과 인물을 개관하며 성공을 이끈 요인을 분석한다.

    1670년대 영국에서 정치 세력으로 등장했던 토리(Tory)를 전신(前身)으로 하는 영국 보수당은 세계 최장수 정당이다. 국왕과 국교회(國敎會)를 지지했던 토리는 국왕에 도전하고 종교적 관용을 주장했던 휘그(Whig)와 함께 시민혁명기 이후의 영국 정치를 주도했다. 하지만 사회경제적 자유주의를 주창했던 휘그와 그 후신인 자유당과 달리 토리와 보수당은 분명한 이념이 없어서 자유당 의원이자 사상가였던 존 스튜어트 밀로부터 '멍청한 당(stupid party)'이라는 조롱을 받았다.

    19세기 후반 침체한 보수당의 면모를 일신시킨 사람은 디즈레일리였다. 지주도 아니고, 국교도로 개종한 유태인이어서 보수당에 어울리지 않았던 그는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의 '두 개의 국민'으로 나뉘었던 영국을 가난한 사람에 대한 배려를 통해 '하나의 국민'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고 '강하고 위대한 영국'을 내세우면서 애국주의를 강조했다. 그가 이끄는 13년 동안 보수당은 '국민의 당'으로 자리 잡았다. 박 교수는 "'오두막이 행복하지 않으면 궁전도 안전하지 않다'는 말을 남긴 디즈레일리가 없었다면 오늘의 보수당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당은 상층·중간 계급을 기반으로 했지만 선거권이 확대되고 노동 계급이 부상하는 19세기 말 이후에도 '하나의 국민' 보수주의를 기반으로 장기간 집권했다. 2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에는 처칠의 지도로 애국 정당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 하지만 1960년대 들어 영국 경제가 쇠퇴하고 사회 혼란이 고조되자 복지 등 국가 개입 대신 시장경제를 강조하고 국가 기율을 다시 세우려는 '뉴 라이트'가 대두했다. 1975년 보수당 당수로 선출된 대처는 1979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후 11년반 동안 집권하면서 공공 부문·노조 개혁과 도덕적 십자군 운동을 통해 '영국병(病)'을 치유했다. 대처를 베낀 노동당 당수 블레어가 등장해 집권하자 보수당은 이번에는 '하나의 국민' 보수주의와 뉴 라이트의 균형과 수렴을 통해 활로를 모색했다. 박 교수는 "필요하면 반대 당의 정책을 훔쳐오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유연성이 영국 보수당을 '성공한 당'이 되게 했다"고 말했다.

    영국 보수당이 유럽 정당들 가운데 가장 성공할 수 있었던 다른 이유는 '통치에 적합한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국민에게 심어줬고 집권을 통해 실증한 것이다. 국민 생활에 직결된 경제·안보에서 보수당은 자유당·노동당보다 앞서갔다. 보수당이 결속과 충성심이 강했던 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보수당은 경쟁 정당들에 비해 내부 분열이 적었고 국민 통합에 주력했다.

    영국과 한국은 역사와 국민성이 다르다. 그럼에도 전례 없는 위기에 놓인 한국 보수 정당의 재생(再生)에 영국 보수당의 경험이 도움이 될까? 박지향 교수는 "보수당이 역사의 흐름을 선취(先取)했던 점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념적 지향과 시대의 요구를 적절히 조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애국 정당'을 부각하는 것이다.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애국주의는 '대한민국 사랑'으로 드러난다. 박 교수는 "'애족심'을 이용해 정당한 북한 비판조차 가로막는 '좌파 민족주의'와의 차별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고자 : 이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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