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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취임한 지 열흘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났을 뿐이다. 그는 이 짧은 기간 동안 전 세계가 깜짝 놀라고, 분노하고 두려움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트럼프라는 이름은 이제 갈등과 분열, 혼란·혼돈의 동의어(同義語)가 돼 버렸다.

미국 정치·외교가 그간 떠받들어온 전통과 가치의 기준에서 보면 그는 분명 이단(異端)이다. 트럼프발(發) 충격의 정점을 찍은 이슬람권 7개국 국민에 대한 미국 입국(入國) 금지 조치만 해도 이런 중대 결정을 전후해 이뤄지는 정치적 협의와 여론 수렴 과정을 모조리 무시했다. 그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취임식에 참석해 이 내용이 담긴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는 "미국은 이슬람 테러주의자들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슬람 7개국 국민 전체를 테러리스트로 몰아가는 듯한 위험천만한 발언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도발적 정책을 계속 밀고 나갈 기세다.

전임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민(移民) 개혁'이라 불리는 행정명령을 추진하는 데 8년의 임기를 다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바마가 서류 미비 불법 체류 청년의 추방 유예 조치를 포함한 1차 명령을 발표한 게 집권 4년차인 2012년이었고, 이어 2년 뒤 보다 포괄적인 2차 안(案)을 내놨다. 오바마의 이민 관련 행정명령은 미국 법원의 문턱을 넘지 못해 좌절했다. 미국 남부 주(州)의 법원들이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을 넘어선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고, 연방대법원은 4대4로 양분(兩分)돼 결론을 못 내렸다.

미국에서 이민 문제는 국가 운영의 기본이 걸려 있는 중대사다. 미국이 '늙지 않는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도 적극적인 이민 정책 때문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통계에 따르면 2016년 미국의 중위 연령(전체 국민을 나이 순으로 세워놓았을 때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의 나이)은 37.9세다. 한국은 41.2세, 일본 46.9세, 유럽연합(EU) 42.7세다. 선진국 중 미국이 가장 젊다. 중국의 37.1세와 비슷하지만, 의료 수준과 사회 안전망 등을 감안하면 미국의 젊음이 돋보인다. 미국 경제를 제일 앞에서 이끄는 실리콘밸리의 경우 이민자 비중이 37.4%에 달하고, 2006~2012년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신생 기업(스타트업)의 창업자 44%가 이민자 출신이라는 통계도 있다. 구글 등 미국을 대표하는 IT 기업들의 창업자 중에는 이민자이거나 이민 2세가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슬람 7개국 입국 제한 조치에 실리콘밸리가 발끈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이렇게 민감한 이민 문제를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일주일 만에 뚝딱 처리해 버렸다. 자신의 조치에 반대하는 관료들을 향해 "(내 지시를)따르든가, 떠나든가 하라"고 으름장을 놨다. 이런 트럼프식 일방통행은 외교·안보에서도 그대로 벌어지고 있다. 미국이 만들고 70년 가까이 공들여 키워온 미국·유럽 동맹의 핵심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쓸모없는 기구'라고 폄하하고, 중국 견제용으로 일본과 손잡고 어렵사리 만든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탈퇴를 감행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동맹(同盟)이나 국제조약은 상황에 따라 언제든 파기할 수 있는 '부동산 거래'와 다를 게 없는 모양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행태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내세운 게 '미국 우선주의'다. 기회 있을 때마다 '오직 미국 우선(only America First)'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우선주의는 트럼프 정권에서만 나타나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역대 미국 정부 모두 그랬다. 세계 각국의 외교 제1원칙 역시 '국익(國益) 우선'이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이 과거와 확연히 다른 것은 세계 질서에서 미국의 의무와 역할에 대한 고민이 통째로 빠져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런 세계 질서의 최대 수혜자였는데도 말이다.

트럼프 측이 취임사의 기본 얼개로 제시했던 '언덕 위의 도시'라는 표현에서도 트럼프식(式) 아전인수가 돋보인다. 미국 역사에서 '언덕 위의 도시(city on a hill)'라는 성경 구절을 처음 사용한 이는 존 윈스럽이다. 그는 영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한 일종의 이민 1세대다. 윈스럽은 1630년 미국행 배 위에서 "우리는 언덕 위의 도시가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의 눈이 우리를 향하고 있다"고 했다. 이후 이 말은 '미국은 다른 나라와 다르다'는 일종의 선민(選民) 의식이 담긴 표현으로 쓰여 왔다. 미국이 참전한 전쟁마다 '자유·인권·민주주의'를 내건 것도 이런 의식과 전통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취임 첫 열흘 동안 트럼프가 보여준 모습은 '미국만의 언덕 위의 도시'일 뿐이다. 이 기조가 변하지 않는다면 세계는 어떤 보편적 가치·기준도 없어진 각자도생의 각박한 시대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정말 답답한 것은 제대로 된 국가적 차원의 논의나 대비 없이 '트럼프의 미국'과 마주하게 될 우리의 현실이다. 기고자 : 박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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