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민 관련 행정명령으로 인한 혼란이 극심하다. 미국 정부는 중동·아프리카 무슬림 7개국 국민에 대해 90일간 비자발급 중단과 함께 난민통제를 강화했다. 반발은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테러를 차단하기 위해 위험인물의 입국을 막아 자국민을 보호하려는 행정조치를 섣부르게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테러를 막겠다고 나섰다가 오히려 위험을 높이는 역효과가 예상된다면 정책이 적절한지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이번 조치는 일반화의 오류 위험이 있다. 특정 국가의 전체 국민을 뭉뚱그려 잠재적 위험 대상으로 못 박아버린 셈이다. 대개 종교 극단주의 폭력투쟁에 가담하는 잠재적 테러리스트의 비율을 전체 종교인구의 1% 내외로 본다. 1%가 적은 숫자는 아니지만, 테러와 무관한 다수 99%도 테러리스트로 의심받으며 미국 입국 거부 대상이 된 것이다. 온건한 이들도 반미 정서를 가지게 될 판이다. 극단주의자들에게는 이 뜻밖의 상황이 호재(好材)다.

진짜 문제는 시리아 내전에 가담한 이른바 해외파 테러리스트들(FTF·foreign terrorist fighters)이다. 시리아, 이라크 및 리비아로 밀입국하여 이슬람국가(ISIL)에 가담한 이들은 물경 3만 명을 상회한다. 100여 개 나라에서 몰려들었다. 튀니지, 사우디 등에서 제일 많이 가담했으며 미국과 유럽 출신도 적지 않다. 험로를 마다치 않고 직접 국경을 넘은 자발적 확신범들이니 이들의 이념 무장이나 폭력성은 가공할 만하다. 언제든 세계 각처, 자신들의 고국으로 돌아가 테러에 나설 수 있고, 추적이 어렵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그러나 미국의 입국 거부 리스트에는 해외파 테러리스트들을 가장 많이 배출한 튀니지나 사우디 등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주로 내전과 혼란이 벌어지는 현장의 나라들만 열거되었다.

이렇다 보니 정책의 실효성 논란을 넘어서서 의도를 의심하는 여론이 솟구치고 있다. 지지자 결속을 위한 노림수라는 설부터, 트럼프 대통령 본인의 사업장과 관련된 국가는 일부러 빼놓았다는 의혹까지 나온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과의 연대 강화설도 들린다. 이란-이라크-시리아-예멘을 묶어서 위험한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중동의 진영을 나누는 시아파 견제 전략이라는 것이다. 여하튼 테러 방지라는 목적에서 벗어나 그 의도를 의심받게 되면 정책 효과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9·11 이후 미국이 '악의 축'을 선포하며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했을 때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9·11 테러의 주범인 알카에다 19명의 국적은 사우디, 이집트, UAE 및 레바논이었는데 정작 '악의 축'은 알카에다와는 상관없는 이란, 이라크 및 북한으로 규정되었고 이라크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 전쟁은 21세기 최악의 정책 실패로 귀결되었다. 이번 논란과 의혹을 보며 과거 이라크 전쟁과 연관된 데자뷔(기시감)가 떠오른다면 지나치게 예민한 상상일까?

현 상황은 거점을 타격하며 알카에다와 싸우던 과거 대(對) 테러전과는 사뭇 다르다. 한결 어려운 싸움이다. 핀셋으로 골라내듯 정교해야 한다. 어디로 숨어들지 모르는 숱한 FTF들 때문이다. 치밀한 추적, 관찰을 위해 미국은 국제사회와 반드시 공조해야 한다. 무작정 국경 통제를 강화하고, 고립주의로 나갈 경우 테러와의 싸움은 실패하고 만다. 지금 트럼프 행정부는 유럽 및 나토와 각을 세울 때가 아니다. 테러 위험도가 높아질수록 다자간 연대가 필수다. 모두가 자국의 담을 높이면 당장은 안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담장 바깥에서 벌어지는 테러분자들의 증식을 인지하기 어렵다. 결국 부지불식간에 더 위험해진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열린 사회가 더 안전하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기고자 : 인남식
본문자수 : 1823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