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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란 장벽을 허무는 걸 의미한다. 장벽을 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반(反)세계화'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영웅이 될 것인가? 역사상 두 장벽이 가장 유명하다. 만리장성과 베를린 장벽. 전자가 외부의 흉노족 침입을 막으려 한 방어벽이라면, 후자는 내부의 동독 주민들이 서베를린으로 가는 걸 막는 담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 국경에 쌓으려는 장벽은 만리장성에 가깝다. 한족은 주변 민족을 오랑캐라 부르면서 야만인으로 취급했다. 만리장성이 문명과 야만의 구분선이라면, 멕시코 국경 장벽은 선진국과 후진국의 경계선이다.

장벽 설치를 결정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국경 없는 국가는 국가가 아니다"며 "오늘부터 미국은 국경 통제권을 다시 찾게 된다"고 공언했다. 이 말은 멕시코인들에게 뼈아픈 과거를 상기시킨다. 미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국경 문제로 전쟁을 벌인 게 멕시코 전쟁(1846~48년)이다. 이 전쟁에서 패한 멕시코는 텍사스와 지금의 캘리포니아, 네바다, 유타, 뉴멕시코와 애리조나 대부분 및 와이오밍과 콜로라도 일부를 빼앗겼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만약 이 지역들이 멕시코 영토에 속해 있다면 오늘날과 같은 부와 번영을 누리지 못할 것이란 점이다. 대런 애스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공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걸쳐 있는 노갈레스라는 도시를 예로 들었다. 담장 하나로 나뉜 이 도시의 한쪽 주민은 평균소득이 3만달러지만 다른 쪽은 그 3분의 1에 불과하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가? 답은 부와 가난을 결정하는 것은 지리적 조건이 아니라 국가 제도라는 것이다. 미국은 가장 포용적 정치 체제와 경제 제도를 가진 국가다. 이런 위대한 국가 제도를 만든 사람은 원주민이 아니라 이민자들이다. 그 이민자들의 후예가 다른 이민자들이 들어오는 걸 막는 장벽을 세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에 "벽인 줄 알았는데 문이었네"라는 대사가 나온다. 현실 세계엔 국경 장벽이 있지만, 인터넷 가상 세계는 국경의 문도 없는 대도무문(大道無門)이다. 베를린 장벽 같은 문 없는 벽은 결국 무너진다는 걸 트럼프 대통령이 깨닫는 날이 오길 바란다. 북한 김정은 또한 알아야 한다. 핵폭탄으로도 분단의 장벽을 지킬 수 없고, 국가의 흥망을 좌우하는 건 창조적 파괴를 할 수 있는 포용적 정치 체제와 경제 제도라는 사실을.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기고자 : 김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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