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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계에 부는 쿠바 열풍이 뜨겁다. 반세기 동안 금단(禁斷)의 땅이었다가 2015년 미국과 재수교를 계기로 봉인이 해제된 쿠바가 패션 디자인에 영감을 주는 원천으로 떠오르고 있다. 신호탄은 그해 쿠바 주제의 컬렉션을 발 빠르게 선보인 여성복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였다. 최근에는 패션 명가(名家)들과 액세서리 브랜드도 쿠바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쿠바의 색채와 전통 의상부터 군복에 이르기까지 이 나라의 다양한 상징을 디자인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올해 봄 컬렉션 주제를 쿠바로 정한 발렌티노의 디자인은 남성복에서 특히 돋보인다. 쿠바 전통 셔츠 '구아야베라(guayabera)'를 연상시키는 깃 넓은 셔츠에 쿠바의 거리 어디서든 보이는 야자수 문양을 넣었다. 군복의 얼룩무늬에는 대담한 장식을 더해 극적인 대비를 노렸다. 빈티지 시가 상자의 그림을 닮은 화려한 자수를 수놓거나, 꽃과 나비를 페인트칠한 듯 큼직하게 그려 넣었다.

마리포사(mariposa)라는 이름의 이 꽃은 쿠바의 국화다. 마리포사는 과거 쿠바를 지배했던 스페인 말로 '나비'란 뜻이기도 하다. 꽃과 나비는 여성복에서도 반복된다. 쿠바가 아직 빗장을 닫아걸기 전인 1950년대풍의 풍성한 스커트도 다양한 디자인으로 변주됐다.

샤넬은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쿠바의 이미지를 차용했다. 쿠바 혁명의 주역 체 게바라(1928~1967)의 베레모, 구아야베라를 재해석한 셔츠가 패션쇼 무대에 등장했다. 쿠바의 명물인 색색의 올드카로 여성들의 치마를 장식했고, 시가 박스 모양을 한 위트 있는 핸드백도 선보였다. '비바, 쿠바 리브레(Viva, Cuba Libre·자유 쿠바 만세)'라는 문구를 새긴 티셔츠는 최근 국내에서도 불티나게 팔렸다.

가방 브랜드 투미의 올해 봄·여름 시즌 콘셉트 역시 쿠바다. 복잡하게 뒤엉킨 바나나 잎을 빨강·파랑·주황 등 다양한 색깔로 표현한 여행 가방을 선보였다. 투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빅터 샌즈는 "쿠바 수도 아바나의 그라피티(길거리 벽화)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그 나라에서 받은 영감을 새로운 형태와 색채로 재해석해 뻔한 디자인이 나오지 않도록 한다"고 말했다.

쿠바는 유럽·미국을 대신할 새로운 자극제다. 쿠바는 단순한 저개발 국가가 아니라 창조적 호기심을 건드리는 문화적 유산이 가득한 곳이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재즈 밴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고향이자, 시가를 사랑했던 문호 헤밍웨이가 미국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이 쿠바다. 여느 나라였다면 벌써 박물관에 갔을 1950년대 올드카들이 스페인 식민지 시기의 고풍스러운 건축물 사이를 달리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이기도 하다.

'쿠바 현상'은 러시아 출신 남성복 디자이너 고샤 루브친스키의 급부상에 이어 나타났다. 2014년 데뷔한 루브친스키는 이방인에겐 암호나 마찬가지인 러시아 문자를 대담하게 활용해 남성복의 신성(新星)으로 떠올랐다. 끊임없이 새롭고 신선한 것을 찾는 패션계가 지금껏 주목받지 못했던 변방으로 계속해서 눈을 돌리고 있는 셈이다. 기고자 : 채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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