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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전에 관람한 제프 벡(72)의 내한 공연은 무척이나 특별한 시간이었다. 전설 반열에 오른 아티스트가 흔히 선보이는 공연과는 결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만난 제프 벡은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위대한 기타리스트인 동시에 젊은 세대가 바라는 '어른'의 표상이었다.

내 경험에 따르면 전설로 불리는 아티스트의 공연은 태반이 '추억팔이'에 가깝다. 철 지난 음악을 쇠퇴한 역량으로 연주하니까. 오리지널을 직접 만난다는 의미 외엔 찾기 힘든 경우가 많고, 때론 멤버가 싹 바뀌며 더 이상 오리지널로 간주하기 어려운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제프 벡은 다르다. 역량을 유지하는 가운데 계속해서 진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심지어 젊은 세대와도 열정적으로 교류하며 성장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제프 벡을 처음 만난 건 2010년 3월의 첫 내한 공연으로 그날 난 문화 충격을 받았다. 음 하나하나가 내가 속한 곳과는 다른 차원에서 날아와 날 꿰뚫은 덕분에 왜 진짜 음악은 CD에 담아낼 수 없다고 말하는지를 처음으로 절감했고, 어떤 사람을 장인이라고 부르는지 확실히 배웠다. 다만 함께 관람한 친구 몇몇이 그 공연을 계기로 기타를 팔고 공부에 매진했다는 역효과 아닌 역효과가 있긴 했지만.

이번 내한 공연은 그와 또 달랐다. 일단 세트리스트부터 싹 갈아엎었다. 20~30대 연주자들과 함께한 록밴드 편성의 새 앨범 수록곡을 중심에 세운 것이다. 제프 벡은 든든한 존재감을 보이는 와중에 살짝 물러서기도 하며 화합했고, 젊은 음악가들과 자아내는 하모니는 '궁극'이라고 부를 만한 경지였다. 으레 연주하리라 여긴 곡이 대거 빠졌음에도 아쉽다는 생각은 일절 들지 않았다. 오히려 7년 전의 공연과 서로를 완벽히 보완하는 느낌이었다.

그날의 제프 벡은 '내가 말이야 한때는'으로 시작하는 장광설 따윈 조금도 늘어놓지 않았다. 몇 갑자나 앞선 내공을 바탕으로 양보하고 화합함으로써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진짜 어른이었다. 어른이 없다는 이야기가 오가는 세태여서 더욱 그리 보인 건지도 모르겠다.

홍형진·소설가

※2월 일사일언은 소설가 홍형진씨를 비롯, 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고군일 2017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자, 김정민 런던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수석, 길해연 배우가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