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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31일 개헌에 동의하는 정당과 정파 대표들이 참여하는 개헌추진협의체를 구성해 차기 대선 전(前) 개헌 추진에 나서자고 여야(與野) 정치권에 공개 제안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서울 마포 캠프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외치(外治)는 대통령이 맡고 내치(內治)는 총리가 담당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주장하면서 이같이 제안했다. 그는 "차기 대통령의 임기 단축도 받아들이겠다"면서 개헌 추진을 위해 조만간 이주영 국회 개헌특위 위원장과 여야 정당 대표들을 만나겠다고 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승자가 독식하고, 그 승자가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는 현행 권력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수명을 다한 5년 단임 대통령제를 폐기하고 분권과 협치가 가능한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분권형 권력구조를 만들기 위해선 의회와 대통령이 같은 시기에 출발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차기 대통령 임기 단축도 충분히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했다.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차차기 대선과 2020년 총선 주기를 맞추기 위해 임기를 3년 정도로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반 전 총장은 "민주당과 그 당의 유력 대선 주자는 '시간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대선 전 개헌에 반대하고 있다"며 대선 전 개헌에 유보적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겨냥했다. 반 전 총장은 "(문 전 대표 주장은) 핑계일 뿐이고 개헌 의지가 없다고 얘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정권 교체, 그 뒤에 숨은 패권 추구 욕망을 더 이상 감추려 해선 안 된다"고 했다. 반 전 총장은 "개헌 추진을 위해 필요하면 문 전 대표를 만날 용의도 있다"고 했다.

반 전 총장은 '개헌 협의체' 구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우리나라가 대내외적으로 위기에 처했는데 불감증이 있는 것 같다. 이 같은 불감증은 너무 많은 정치인들이 정치 문제에만 매몰돼 있기 때문"이라며 "20여일 서울에 있으니 저 자신도 거기에 함몰되는 것 같아 '이래서는 안 되겠다. 국민을 각성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의 이날 제안에 대해 캠프 관계자는 "'제3지대론'자들의 공통점은 반(反)패권과 개헌 아니냐"며 "이들에게 개헌을 고리로 뭉치자고 공개 제안한 것"이라고 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촛불 집회 관련 질문에 "광장의 민심으로 표현되는 국민 여망은 잘못된 정치로 인해 쌓인 적폐를 확 바꾸라는 뜻"이라면서 "그러나 광장의 민심이 초기 순수한 뜻보단 약간 변질된 면도 없지 않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들이 '어떻게 변질됐단 뜻이냐'고 거듭 묻자 "플래카드라든가 외치는 구호가 (초기와) 좀 다르다. 조심스럽게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반 전 총장 측 관계자는 "촛불 집회에서 '이석기 석방' 같은 주장이 나오는 등 일부 세력이 촛불 집회의 순수성을 변질시키는 것 아닌가 우려를 나타낸 것"이라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5일 '정규재TV' 인터뷰에서 최순실 국정 농단 관련 의혹을 부인한 데 대해선 "대통령이 직무 정지된 상황에서 (그런 인터뷰는) 바람직하지 않았다"고 했다.

민주당 윤관석 수석대변인은 "지지율이 떨어지니까 고육책을 쓰는 것이냐"고 했고, 국민의당 김경진 수석대변인도 "개헌은 외부 기구가 아닌 국회 개헌특위에서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측 김경수 의원은 "국민의 요구와 동떨어진 정치권만의 이합집산에 관심 없다"고 했다. 새누리당 인명진 비대위원장은 "반 전 총장이 무슨 힘을 믿고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고, 바른정당 장제원 대변인은 "개헌연대라는 명분은 좋지만 현실성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