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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지난 31일(현지 시각)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러시아·중국과 함께 "유럽에 대한 위협"으로 지목했다. 유럽 지도자가 미국 대통령을 '위협'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고, 이슬람 극단주의와 유럽 극우 세력의 성장에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는 유럽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20세기 이후 세계 자유민주주의를 이끌어온 양대 축인 미국·유럽이 트럼프 등장 이후 갈등 관계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투스크 의장은 이날 EU 28개 회원국 정상에게 보낸 편지에서 "트럼프 정부 등장은 유럽 미래를 대단히 예측 불가능한(unpredictable) 상황에 빠트렸다"면서 "전후 70년간 이어졌던 미 외교정책이 '의문' 속에 휩싸였다"고 했다. 미국과 유럽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의 자유와 민주, 인권, 평등이란 보편적 가치와 자유무역 발전을 위해 같은 편에 서서 싸웠지만 이젠 미국 역할을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투스크 의장은 또, EU가 직면한 위협으로 바다에 대한 주권을 점점 더 강하게 주장하는 중국, 우크라이나와 주변국에 호전적인 러시아, 국제 테러와 전쟁 등을 꼽으면서 "트럼프의 '걱정스러운 선언들'도 그중 하나"라고 했다. 그는 "역사를 통틀어 지금처럼 외부 위협이 유럽에 한꺼번에 닥친 적은 없다"고도 했다.

유럽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전후로 내놓은 각종 정책과 발언들에 대해 극도의 경계심과 반감을 갖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에 대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에 이어 다른 회원국 탈퇴가 이어질 것"이라고 했고, 나토에 대해선 '한물간 쓸모없는' 조직이라고 혹평했다. 이런 발언은 유럽에 트럼프가 EU와 나토의 몰락을 바라는 것처럼 비쳤다. 트럼프가 러시아와 급속히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것도 유럽의 평화와 안정을 위험에 빠뜨리는 '변수'가 될 수 있다.

또, 이슬람 7개국 국민 입국을 금지하는 그의 반(反)이민 행정명령 등으로 이슬람국가(IS) 등 국제 테러 조직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앰버 러드 영국 내무장관은 이날 의회 내무위원회에서 "트럼프 정책은 IS에 선전 기회를 주고, 유럽 내 잠재적 동조자들을 더욱 급진적으로 만들 것"이라며 "분열을 조장하고,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유럽 극우 세력도 트럼프 등장으로 기반이 탄탄해지면서 공세적 활동에 나서고 있다. 오는 4월 프랑스 대선 때 결선 진출이 유력한 마린 르펜 대표의 국민전선은 이날 AFP통신에 "대선에서 승리하면 트럼프 반이민 행정명령과 비슷한 조치를 단행할 수 있다"고 했다. 르펜은 대통령이 되면 EU 탈퇴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오는 3월과 9월 각각 총선을 치르는 네덜란드와 독일의 극우 정당들도 트럼프 정책을 "전폭 지지한다"는 입장이다.

유럽 주요국 정상들은 트럼프와 다른 길을 가겠다는 입장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트럼프 보호무역주의와 반이민정책으로 세계가 혼란에 빠지고 경제가 불안정해졌다"면서 "유럽은 우리의 입장을 확고하게 정한 뒤, (트럼프와) 단호한 대화로 세계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트럼프 반이민정책에 대해 "아무리 단호하게 테러에 대응한다 해도 특정 신념을 지닌 이들 모두에게 혐의를 두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최근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가진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도 "트럼프 반이민정책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유럽이 향후 트럼프에게 어떻게 맞설 것인지는 오는 3일 몰타에서 열리는 EU 정상회의 때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투스크 의장은 "EU는 미국과 유대를 약화하거나 무효화하려는 세력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며 "미국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좌우명을 상기시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기고자 : 장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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