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서울 시내 한복판에 1930년에 지은 아파트가 있다. 서대문구 충정로 3가에 있는 충정아파트다.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다. 충정로 높은 건물들 사이의 5층짜리 연두색 건물로 87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금 이름은 충정아파트이지만 지어질 때 이름은 도요타아파트였다. 소유주였던 일본인 도요타 다네오 이름을 따서 지었다. 도요타(豊田)의 한자를 따서 풍전아파트라고도 불렸다. 지하 1층, 지상 4층의 거대한 도요타아파트는 반도호텔과 함께 당시 서울의 대표 건물로 손꼽혔다.

주목받는 건물이다 보니 웃지 못할 사기 사건도 생겼다. 6·25전쟁으로 아들 6명을 모두 잃었다는 김병조라는 사람이 1961년 등장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 소식을 듣고 당시 시가로 5000만원이던 충정아파트 건물을 통째로 김병조에게 넘겨줬다. 김병조는 아파트 5층에 가건물을 설치하고 '코리아 관광호텔'로 이름 붙여 아파트를 숙박업소로 사용했다. 하지만 1년이 채 되지 않아 김병조의 말은 모두 거짓말로 밝혀졌다.

여러 주인을 거쳐 국세청이 다시 충정아파트를 소유하게 됐는데 1975년 유림아파트로 개명하고 주민들 요청에 의해 5년 상환 조건으로 주민 소유가 됐다. 1979년에는 아파트 앞 도로가 8차선으로 확장되면서 건물 일부가 헐렸다. 외벽에 금이 간 고령의 아파트이지만 아직 41가구가 살고 있다.

지난해부터 충정아파트를 두고 서울시와 주민들 사이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작년 9월 주거환경이 불량한 지역을 정비하는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이 시행되면서 충정아파트가 재정비구역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재정비 소식에 충정아파트 주민들은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나섰다. 1층에 입주해 있는 표혜령씨는 "낡은 아파트라 잠을 자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물론이고 난방도 안 되는 데다 주변 고층건물 때문에 볕도 잘 안 든다"며 "헐고 다른 건물을 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시 생각은 좀 다르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충정아파트는 근현대 문물로 보존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건축물"이라며 "서울 미래유산으로 선정해 보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 미래유산에 선정된다고 해도 아파트 주민들이 건물을 보존해야 하는 법적 의무는 없다. 충정아파트 보존을 위해 서울시는 2013년 단계적 매입을 시도했다. 당시 서울시는 아파트를 사들여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재정 부족으로 현재 매입을 중단한 상태다.

'대한민국 아파트 발굴사'의 저자 박진희씨는 "충정아파트는 우리나라 아파트 역사에서 눈여겨볼 만한 가치가 있는 아파트로 보존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도시재정비사업 관계자는 "아파트가 너무 오래돼 지금 상태를 그대로 보존하는 것은 위험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고자 : 김수경
본문자수 : 1370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