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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 무슨 인기가 30년이나 가냐. 어째서 30년 후의 난 여전히 콘서트 표를 못 사는 거죠?" 방 한가운데 보물단지처럼 모셔둔 유덕화 패널 사진을 바라보며 절규하는 한 여자, 폭풍 클릭에도 사랑하는 앤디(유덕화의 영어 이름)의 공연 표를 예매하지 못한 절망감에 한숨을 내쉬는 그녀. 표도 없는데 굳이 공연장까지 찾아가 유덕화의 대형 브로마이드 앞에서 셀카를 찍으며 아쉬움을 달래는 문제적 여자 '린전신'. 그녀의 소녀 시절이 궁금해지는 건 그것이 내겐 너무나 익숙한 '응답하라' 시리즈의 대만판처럼 느껴졌기 때문일까.

고백하면 나는 이번에도 콜드 플레이 내한 공연 표를 예매하지 못했고, 홧김에 노트북을 부술 뻔했다. 어째서 나는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콘서트 예매에 매번 실패하는 걸까. 게을러서? 클릭이 느려서? 영화 속 유덕화 빠순이 린전신이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콜드 플레이가 결성되자마자 크리스 마틴에게 반해 이름이 '크리스'인 모든 남자를 좋아하겠다고 맹세하던, 맹하던 내 청춘이 떠올라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어이, 친구! 크리스가 귀네스 팰트로랑 이혼했대" 같은 문자메시지를 받고 손뼉 치며 좋아하던 내가 유덕화 표 못 끊었다고 머리를 쥐어뜯는 린전신과 뭐가 다른가.

영화 '나의 소녀시대'는 포스터부터 맘에 들었다. 1990년대 소년들이 즐겨 입던 점퍼 스타일, 무스 발라 꼿꼿이 세운 앞머리나 단정한 바가지 머리가 유독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39점을 89점으로 고치고,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을 많이 모으면 그와 결혼할 가능성이 높다고 믿던 시절, 교문 앞을 지키던 선도부 선배가 터무니없이 멋있어 보이던 그때가 떠올랐다. 공부 빼면 9시 뉴스마저 재밌었던 나, 안경 벗고 화장하면 초미녀가 되어 세상 모든 남자와 연애할 수 있을 것 같던 그 시절의 우리. 그것이 나와 너 우리의 소녀시대가 아닌가.

어느 날, 린전신(송운화)은 책상에 놓인 편지 한 통을 본다. 고대하던 연애편지인가 싶어 꺼내 보지만, 그것은 다름 아닌 행운의 편지. 당신이 생각하는 '그것'이 맞는다. 받은 지 일주일 안에 똑같은 내용을 적어 5명에게 보내지 않으면 대대로 재수 옴 붙어 교통사고, 줄초상, 벼락 맞기 십상이라는 바로 그 불운의 편지 말이다. 소심하고 착한 린전신은 편지를 누구에게 써서 보낼까 고민하다가, 짝사랑했던 전교 1등을 괴롭히는 문제아 쉬타이위(왕대륙)에게 보내기로 마음먹는다. 문제는 눈치 100단인 쉬타이위가 편지를 보낸 주인공이 린전신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린다는 것. 학교에서 가장 유명한 문제아이기도 했던 그는 꼬투리를 잡아 린전신에게 온갖 심부름을 시키며 못살게 군다.

미운 정도 정. 롤러장에서 균형을 못 잡아 뒤뚱대는 그녀를 밀어 넘어뜨리면서, 면과 소스를 따로 담아 오라며 있는 대로 구박하면서, 그는 점점 그녀에게 빠져든다. 그녀의 착한 마음을, 그녀의 기이한 귀여움을. 하지만 한 번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 없는 싸움꾼은 진심을 전하는 데 서툴기만 하다.

애써 꾸미고 나온 그녀에게 이모 같다고 면박을 주거나, 그녀가 좋아하는 줄 알고 일부러 산 유덕화 미니어처 인형을 "맘에 들면 가지든지!" 하며 툭 던져 놓는다. 하지만 그는 곧 린전신이 좋아하는 게 자기가 아닌 전교 1등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안소니를 좋아하는 캔디의 뒷모습에 눈물 흘리는 테리우스 신세가 된 것이다.

캔디처럼 씩씩한 린전신 역시 그에 대해 알아갈수록 이상하게 마음이 쓰인다. 짝사랑해왔던 전교 1등이 아니라, 그의 뒷모습이 점점 궁금해진 것이다. 그가 전교 1등과 중학교 동창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또 수학 올림피아드에 나갈 정도로 수재였지만 아픈 기억 때문에 스스로 문제아가 되어 자신을 망가뜨리고 있었다는 것도. 그뿐인가! 그가 자기가 아닌 다른 여자애를 좋아하는 것도 알게 된다. 이해가 오해로 꽃피는 순간, 그들은 농담 반 진담 반 각자의 첫사랑을 이루어지게 해주자고 약속한다. 좋아하는 사람을 눈앞에 두고서 말이다.

마음은 언제 우리에게 저 사람이 내 심장에 집을 짓고 산다는 걸 또렷이 알려줄까. 대개 사랑은 그 사람이 내 눈앞에서 사라지고 나면 알게 된다. 린전신 역시 그렇다. 다시는 싸우지 않겠다고, 예전처럼 공부하겠다고 약속하고, 실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그는 어느 날 도망치듯 외국으로 사라진다. 믿을 수 없는 급작스러운 이별.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그녀는 전교 1등에게 녹음테이프 하나를 받는다. 테이프 안에는 그가 사라진 이유와 달라졌던 이유, 그 모든 것에 대한 이유가 들어 있다. 그가 달라지고 싶었던 건 딱 하나. 린전신에 대한 사랑이었다는 걸.

헤어진 사람들의 82%가 다시 만난다는 통계를 처음 알려준 건 영화 '연애의 온도' 주인공 김민희였다. 그 통계를 알기 전부터, 나는 헤어졌다고 절망하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얘기하는 독한 사람이었다. "한 달 후에도 헤어진 상태면 그때 울어도 늦지 않아! 아마 다시 네가 연락하거나 그쪽에서 연락 올걸?"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한 달이 일 년이 되고, 일 년이 오 년이나 십 년이 되어도 그리움이 (옅어지기는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도 있다. 시간이 약이 되지 않을 사람들. 20년이 넘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내 사랑도 그렇고, 30년이 다 되어가는 유덕화에 대한 그녀의 사랑도 그런 셈이다.

어차피 헤어질 텐데 왜 만나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에겐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배고플 텐데 밥은 뭐하러 먹느냐고. '허기'란 육체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신적 허기와 결핍이 실패를 예감하더라도 우리를 다시 한 번 사랑에 빠지게 하니까. 유덕화의 콘서트 표 예매에 실패한 그녀가 낙담한 채 커피를 마시다가, 우연히 공연장 밖으로 나온 실제 유덕화를 만난다는 설정이 만화적이라고 해도 나는 좋았다. 유덕화 콘서트의 기획을 그 시절의 쉬타이위가 했다는 작위적 설정 역시 그랬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전하는 가장 큰 거짓말은 '첫사랑과 결혼해서 지금까지 행복하게 산다'는 설정 그 자체 아닌가. 하지만 바로 그런 환상 때문에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1990년대의 나를 다시 만난다. 타이베이 한복판에서 우연히 첫사랑과 마주친 그녀 린전신의 모습에서 '어린 나'를 발견하면서.

●나의 소녀시대―프랭키 첸 감독의 작품

백영옥·소설가 기고자 : 백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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