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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 사용이 늘고 현금 사용이 줄어들수록 위태로운 기업이 있다. 지폐와 동전, 수표 등 현금을 만드는 한국조폐공사다. 그런데 이 회사의 매출이 매년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돈 찍어주는 수입은 줄었지만 다른 사업으로 더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 회사의 효자는 보안 기술이다. 세계 최고 수준인 위폐 방지 기술을 여러 분야에 응용하고 있다. 조폐공사는 요즘 화장품 제조업체인 ㈜카버코리아에 위·변조를 막기 위한 정품 인증 마크 등을 공급하고 있다. 카버코리아는 중국 현지의 짝퉁 제품으로 타격을 입었으나 조폐공사 기술이 적용된 제품을 출시해 매출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세계에서 손톱깎이를 가장 많이 판매하는 777(쓰리세븐)의 제품에도 진품과 정품을 구별할 수 있도록 금속 표면에 특수 처리를 했는데, 이 기술을 제공한 곳도 조폐공사다. 조폐공사 관계자는 "위·변조 방지 기술 특허 82건을 민간 기업에 제공하는 등 기술 공유와 판매로 더 많은 수입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8년 시작한 전자여권 사업도 매출에 큰 기여를 한다. 2008년 정부는 기존 종이 여권 대신 위·변조가 어렵게 IC칩을 내장한 전자여권을 도입했으며, 여권 제작을 조폐공사에 맡겼다. 해외여행이 급증하면서 전자여권 수요도 늘어나 지난해 조폐공사는 사상 최대인 462만권을 만들었다. 우리 전자여권의 보안성을 높이 평가한 중동의 한 국가는 자국 전자여권에 들어갈 IC 칩 100만개 제작을 조폐공사에 맡겼고, 동남아시아 한 국가는 아예 자국민의 전자여권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해왔다. 공사 측은 "지난해 전자여권의 첫 수출길을 열었다"고 했다.

위·변조 방지 기술이 요구되는 각종 신분증과 주민카드 제작 사업도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 1월 여성가족부는 전국 주민센터에서 교통카드와 선불 결제 기능이 있는 청소년증을 무료 발급한다고 밝혔다. 조폐공사가 만드는 이 청소년증은 보는 각도에 따라 두드러지는 별 문양 등 여러 보안 기술이 접목돼 있다. 정부 전자공무원증과 장애인 복지카드, 외국인 등록증을 만드는 곳도 조폐공사다.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에서도 지난해 전자주민증 발급 시스템과 주민증 300만장을 만들어달라고 의뢰해왔다.

조폐공사는 금(金) 사업과 문화 메달 사업도 한다. 국내 금 시장에 순도나 중량, 유통 경로가 불투명한 금이 많이 유통되고 음성 거래가 많은 점에 착안해 2014년부터 골드바 사업에 진출했다. 공기업의 공신력을 바탕으로 한 조폐공사의 브랜드인 '오롯골드바'는 작년에 시중은행 등을 상대로 260억원어치를 판매했다. 올해 매출은 400억원을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문화 메달은 금·은·동 등 귀금속으로 각종 기념 메달을 만드는 사업이다. '한국의 탈 시리즈 메달'과 '통일 기원 메달' '훈민정음 반포 570돌 기념 메달' '박인비 골든그랜드슬램 기념 메달' '종교개혁 500주년 메달' 등 각종 행사와 트렌드에 맞춘 메달을 만들어 판다. 한류 스타 송중기와 송혜교가 새겨진 '태양의 후예 메달'도 출시했다. 메달 제작엔 잠상(숨어있는 문양) 등 첨단 위·변조 방지 기술이 동원된다고 한다. 공사 관계자는 "고객이 원하는 사진을 새겨넣는 '축하 기념 요판화 + 나만의 메달세트' 상품도 있다"고 했다.

기존 화폐 사업은 수출로 활로를 찾고 있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정부와 보안 기술이 적용된 화폐 용지 4600t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중동엔 동전 8900만개를 수출했다. 공사는 인도, 베트남, 미얀마에도 화폐 용지를 수출한 바 있다. 그러나 화폐 용지나 주화 수출은 적자를 계속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국정감사에선 "사업 다각화도 좋지만 일부 수출 항목의 경우 지속되는 적자를 벗어날 대책을 마련하라"는 비판이 나왔다.

조폐공사의 국내 화폐 발행량은 확연히 줄어들고 있다. 5만원권과 1만원권 등 지폐는 2007년 20억장을 찍었으나 작년엔 7억7500만장으로 줄었고, 수표 발행량은 11억8000만장에서 1억9100만장으로 대폭 감소했다. 10년 전 매출액의 60%를 차지했던 국내 화폐 사업의 비중은 지금은 32%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업 다각화 덕분에 조폐공사의 매출액은 2007년 3348억원에서 2014년 4276억원, 2015년 4595억원, 지난해엔 4640억원으로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영업이익도 조금씩 늘어나 작년엔 60억원을 기록했다.

김화동 한국조폐공사 사장은 "최근 내부 직원들을 상대로 '사내 벤처' 공모를 통해 '가짜 석유 판별 특수물질 사업'을 차기 사업 아이템으로 선정했다"면서 "전통 화폐 사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모든 임직원으로부터 아이디어를 받고 있다"고 했다. 기고자 : 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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