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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희의 날씨레터] 봄비

오늘은 입춘, 봄이 오고 있네요… 비오는 날 공연 한 편 어떨까요
    이진희

    발행일 : 2017.02.04 / 사람 A25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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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오후부터 내일 오전 사이 전국에 비나 눈이 올 것 같습니다. 이런 주말에는 영화나 공연을 한 편 보면 딱 좋지요. 얼마 전 눈 오는 날 대학로에 연극 '꽃의 비밀'을 보러 갔어요. 장진 연출 특유의 유쾌함과 배우들의 열연이 더해져 두 시간 내내 웃느라 땀났습니다. 제 몸과 맘을 냉동시켰던 한파주의보는 자동 해제되더군요.

    줄거리만 들으면 섬뜩할 수 있어요. 보수적인 이탈리아 한 마을에 사는 절친한 주부 넷은 어느 날 남편들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다 같이 차를 타고 환락가로 가다 추락 사고가 난 것이죠. 이제야 여자들은 털어놓습니다. 농사일을 아내에게 다 떠넘긴 남편의 폭력, 혼외자, 바람까지…. 슬픔과 동시에 해방감을 느끼게 되죠. 마침 다음 날 남편들은 보험 가입을 앞두고 있었고 홀로 남겨진 아내들은 보험금이라도 받기 위해 남장을 합니다. 꽃들이 비밀스러운 하루를 보내지요.

    이 과정을 위트 있게 그렸습니다. 관객이 흠뻑 빠져 울고 웃게 한 비결은 '공감'이었지요. 배경을 한국으로 바꿔도 무방합니다. 주부의 에피소드, 여성이 사회적 약자로서 겪는 문제는 비슷하니까요.

    무대에서 아내들이 "부부끼리 전화를 한단 말이야?" "오, 하필 같은 집에 있는 남자를 사랑하게 되다니!" 같은 농담을 할 때 뒤에 앉은 여사님들이 박수까지 치시더라고요. "대통령이 바뀐다 해도 우리 삶이 나아지진 않아"라는 대사에서 유독 웃음소리가 컸지요. 작은 무대에 관객의 속마음이 하나하나 펼쳐질 때마다 웃음과 연민, 위로가 묘하게 뒤섞였습니다.

    마지막에 남편들은 기적적으로 살아납니다. 푹신한 눈 덕분이었어요. 극중 폭설이 온다는 예보를 들었을 때 이 결말을 짐작했었어요(막 쌓인 눈은 틈새가 커서 추락의 충격을 줄여주니까요). 남편들이 살아서 다행이지만 아내들이 수동적인 '꽃'에서 벗어나기 힘든 사회를 풍자하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이 절기 '입춘'이지요. 다가올 꽃의 계절에는 이 시대의 연약한 꽃들이 더 활짝 피어나길 소망해봅니다. 아, 봄이 오기 전 2월에도 한두 차례 강추위가 엄습할 수 있어요!


    기고자 : 이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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