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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는 쉰 고개를 넘었다. 1962년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부터 치면 쉰다섯이다. 수출 100억달러라는 고지에 올라섰던 1977년은 10대 중반이었고,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고 했던 1980년대 말에는 20대 중반의 청년이었다. 연평균 성장률이 10%를 넘나들었다. 펄펄 날았다. 30대 후반에 겪은 외환 위기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중년이 됐다. 성장률이 2%대로 주저앉았다. 혈압이 높아지는 것처럼 실업률이 슬금슬금 오르더니 청년(15~29세) 실업률은 역대 최고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무릎이 시큰거리고, 오르막길에서는 숨이 찬다.

더 큰 일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늙어가는 것이다. 어렵다 어렵다 해도 세계 10위권으로 성장한 경제가 2%대 중반의 성장을 하는 것이 낙제점은 아니다. 불황형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더라도 무역수지 흑자는 1000억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한 걸음 더 내딛겠다는 마음이 흐려지고, 꺾여가는 것이 문제다.

조선일보와 한국경제연구원이 작년 말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이런 걱정이 커졌다. '앞으로 한국 경제가 어떤 모습을 갖게 되기를 희망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52.8%)이 '저성장 해도 성장의 과실을 고르게 나누는 나라'라고 대답했다. '경제가 축소되더라도 빈부 격차는 전혀 없는 나라'를 원한다는 대답이 29.9%나 됐다. '빈부 격차가 커지지만 고성장하는 나라'를 원한다는 대답이 14.7%였다. 이 설문 조사는 성장과 분배 어느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지 알아보려는 것이긴 했다. 우리 국민은 "우선 파이를 키워서 나눠 먹을 파이 조각을 크게 만들자"는 말에 더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렇게 답을 할 순 없었을까. "고성장을 하고 성장의 과실도 고르게 나누는 나라를 원하는데 보기에 없으니 답을 못하겠다."

이런 여론 조사도 있었다. 가족이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생각은 1998년에는 조사 대상의 89.9%를 차지했지만, 2014년에는 31.7%로 낮아졌다. 반대로 가족이 아니라 사회 등에 부양책임이 있다는 생각은 2%(1998년)에 불과했지만 2014년에는 51.7%로 절반을 넘었다. 국민 2명 중 1명은 부모 부양을 가족이 책임져야 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얘기다. 살림살이가 어려워지니 그런 모양이라고, 복지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들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당혹스러운 일이다.

대선 후보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저마다 성장과 분배에 대한 처방들을 쏟아내고 있다. 기본 소득이라는 이름으로 나라에서 돈을 나눠주자는 말도 나온다.

지금은 식상해졌지만, 한때 '다시 뛰자'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다시 뛰려면, 마음부터 먼저 굳게 먹는 게 순서일 듯싶다.

그게 아니라면 이쯤에서 멈춰 서든가, 혹은 이제부터는 천천히 걸어가자고 합의하면 그만이다. 만약 그렇다면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멈춰서는 건, 뛰지 않고 걷는 건 우리뿐이다. 세상은 계속 뛰고 있다. 10위권 경제 순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아니다. 지금의 복지 수준이라도 지속할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니다. 기고자 : 이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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