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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법원은 역사의 방향을 여러 번 틀었다. 좋은 방향만이 아니다. 1857년 '드레드 스콧 판결'은 나라를 두 쪽 낸 최악의 판결로 꼽힌다. 미 연방대법원은 노예를 '노새나 말과 다름없는 주인의 재산'이라며 노예제의 정당성을 옹호했다. 이 판결은 미국이 피땀 흘리며 쌓아올린 노예제의 정치적 해법을 몽땅 무너뜨렸다. 출구를 찾지 못한 갈등은 얼마 후 남북전쟁으로 폭발했다. 법치가 엇나갔을 때 벌어지는 일을 피로 깨달은 나라가 미국이다.

▶백 년 후 미 대법원은 반대 역할을 했다. 여덟 살 흑인 소녀 린다 브라운이 먼 흑인학교 대신 가까운 백인학교에 다닐 수 있는 권리를 인정했다. 흑백의 생활 터전을 나누는 소위 '분리 평등' 원칙이 당연하던 시대였다. '브라운 대(對) 교육위원회'로 불리는 판결을 계기로 미 사회는 차별과 결별하기 시작했다. 리처드 클루거의 인종차별에 대한 명저 '단순한 재판'은 판결 의미를 이렇게 기술했다. '미국이 물질적 풍요 이상의 어떤 가치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어떤 가치'란 무엇일까. 180여년 전 프랑스 지식인 토크빌이 선구적으로 정리했다. 그는 자유와 평등이 양립하지 못하고 충돌을 일으켜 결국 독재와 전제로 후퇴하는 프랑스대혁명의 해법을 미국에서 찾았다. '자유와 평등의 공존'. 이것이 그가 생각한 미국의 가치였다. 그가 열 달 동안 현장에서 본 미국은 '가장 비범한 사람이 가장 평범한 사람을 만나도 거리에서 악수하는 나라'였다. 공존의 비결은 '평등'이었다. 그 후 미국의 가치는 인종·성(性)·소수자에게로 확대됐다.

▶이방인 토크빌은 미국의 약점도 잘 파악했다. 미국은 '돈에 대한 숭배가 인간에 대한 애정을 압도하는 나라'였다. 미 역사에서 그 약점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시대는 언제일까. 요즘 상황을 보면 훗날 '트럼프 시대'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국경에 장벽을 쌓겠다고 하더니 특정 국민의 입국을 막는 '반(反)이민' 명령으로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 그가 주장하는 가치는 '자유·평등'이 아니라 오직 '이익'이다. 독일 슈피겔지(誌)는 최근호 표지에 트럼프 대통령이 '자유의 여신상' 목을 잘라 들고 있는 그림을 실었다.

▶이번에도 역시 법원이 일어섰다. 입국 금지를 잠정 중단하라는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미국의 국경은 다시 열렸다. 트럼프는 이 결정을 "터무니없다"고 했다. 정부 항소로 연방대법원이 다시 역사적 키를 잡았다. 어떤 명판결이 또 한 번 미국을 바꿀까. 이번에도 미국의 가치가 한 걸음 더 진보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