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검색목록 > 기사상세보기
타이틀

"촛불과 태극기 참여? 난 관찰자일 뿐"

소설 '공터에서' 낸 김훈… 시대의 피해자들 다룬 이야기
    정상혁

    발행일 : 2017.02.07 / 사람 A23 면

    종이신문보기
    ▲ 종이신문보기
    그는 늙었다. 머리가 셌고 의료비 지출이 늘었다. "몸이 많이 안 좋았다. 노화 현상 같다. 글을 쓰기가 싫었다."

    그는 늙은 말(馬)을 떠올렸다. 1973년 죽은 선친이었다. "아버지는 나라가 망해 없어진 1910년에 태어났고 나는 그 나라를 다시 만들어 정부 수립을 하던 1948년에 태어났다. 두 숫자가 우리 부자(父子)의 운명적 좌표처럼 찍혀 있다. 모두 그 시대의 피해자였고, 그들의 얘기를 소설로 썼다."

    6년 만에 신작 소설을 낸 소설가 김훈(69·사진)은 6일 기자간담회에서 "역사의 하중을 견딜 수 없어 바깥을 떠도는 인간을 그렸다"면서도 "5권짜리 긴 글을 쓰고 싶었으나 기력이 미치지 못했고 많은 부분을 버려 애초에 생각한 것보다 초라해지고 말았다"며 겸연쩍어했다. 소설은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고 군사독재 시절을 관통한 아버지와 그의 후손이 겪는 심산한 생활상을 그린다. 자전적 소설로 홍보되기도 했다. 김훈은 "주인공 마동수가 내 아버지 김광주를 모델로 한 것이 아니냐고들 하는데, 아버지 한 명이 아니라 그 시대 여러 아버지를 합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어체로 말했다. 말투와 문체가 같았다. "나는 문체를 매우 신중하게 고르는 사람이다. 특히 조사(助詞)는 엄청 중요하다. 한국어로 사유한다는 것은 조사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비가 내린다'와 '비는 내린다'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요새 젊은 작가들이 문체에 대한 고민이 없어 안타깝다."

    소설을 위해 과거 신문을 자주 참조했다. "옛 신문을 보니 이 사회의 유구한 전통을 알겠더라. '갑질'이었다. 6·25전쟁 때도 고관대작은 군용·관용차를 징발해서 요강까지 싣고 도망쳤다. 이런 나라에 태어나 글을 쓰고 있구나 싶어 슬펐다." 그는 "앞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나름의 조심스러운 글쓰기를 하게 될 것 같다"고도 했다.

    이날 간담회엔 기자 30여 명이 모였고, 각자의 질문을 던져대 갈피가 없었다. 근현대사를 다루지만 소설에 '색깔'이 없다 보니 집요하게 광화문 광장과 촛불과 태극기 집회에 대해 물어댔다. 김훈은 도망치지 않았지만 자신의 위치가 관찰자이며 사실에 입각하려는 것을 강조했다. "최근 지인들로부터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에 함께 가자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감기에 걸렸다며 거절했죠. 그때 저는 감기에 걸려 있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연말에 혼자 광장을 찾은 적이 있다. "시대가 공회전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면서도 "양쪽 전부의 관찰기를 문학 계간지에 발표하려 한다"고 했다.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다. 김훈은 빈 종이에 필압(筆?)을 가해 그 고통이 글이 되게 한다. 이번 소설 제목은 '공터에서'다. "역사적인 구조물이나 시대가 안착할 만한 건물이 들어서지 않은 땅, 나의 아버지가 살아온 시대, 앞으로 뭔가를 지어야 할 공간이 바로 공터"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간담회를 마치고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갔다. 그 공터에서 또 시작되는 것이다.

     

    기고자 : 정상혁
    본문자수 : 1500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
    인쇄 라인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