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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진짜?] '사임당' 속 안견 그림

'금강산도', 안견이 그렸다고?
    허윤희

    발행일 : 2017.02.07 / 문화 A21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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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에 안견(安堅)의 '금강산도'라는 작품이 나온다. 어린 사임당은 이 그림을 보려고 남의 집 담장을 뛰어넘는다. 조선시대와 21세기가 교차하는 드라마에서 '금강산도'는 신사임당(申師任堂·1504~1551)과 미술사 강사 서지윤을 연결시키는 핵심 고리다. 그런데 이 그림, 과연 실존 작품일까?

    ◇안견의 금강산도?(X)

    결론부터 말하면 이 작품은 허구다. 안견의 '금강산도'라는 현존 작품도 없고 '금강산도'를 그렸다는 기록도 전해지지 않는다. 조선 초기 대표 화가인 안견은 세종부터 세조 때까지 활동했다. 안견 그림으로 추정되는 작품은 여럿 있지만, 확실한 현존 작품은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가 유일하다. 1447년(세종 29년) 4월 20일 밤 세종대왕의 셋째 왕자인 안평대군이 꿈에 무릉도원을 봤다. 안평대군은 당대 최고 화가인 안견에게 꿈에 본 정경을 그리게 했고, 조선 전기 회화의 최고 걸작이라 불리는 '몽유도원도'가 탄생한다.

    안견이 '금강산도'를 그렸을 가능성은 있을까. 한국 회화사 연구자인 이원복 부산시립박물관장은 "금강산은 고려시대부터 그림 소재로 다뤄졌고 조선 초기에는 궁중의 명에 따라 중국 황실이나 외국 사신들에게 주기 위해 금강산을 종종 그렸다"며 "안견도 충분히 금강산을 그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수미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은 "금강산은 고려 말부터 화가들의 주요 관심 대상이었기 때문에 안견이 그렸을 가능성은 있지만 어떤 양상으로 그렸을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금강산도'는 17세기 무렵부터 문인 화가들이 감상용으로 그리기 시작했고, 18세기 전반 겸재 정선(1676~1759)에 의해 집대성됐다. 겸재는 금강산을 여러 차례 답사하며 독자적인 진경산수화를 이뤘고, 이후 심사정·이인문·김홍도·김윤겸 등 많은 화가가 '금강산도'를 그렸다.

    드라마 속 '금강산도'는 제작팀 주문을 받고 대구 출신 화가 장병언(36)씨가 그렸다. "안견 풍의 그림을 그려달라"는 주문에 '몽유도원도'와 그의 화풍에 영향을 준 중국 북송의 화가 곽희의 그림을 섞어서 그렸다고 한다.

    ◇사임당은 안견의 산수화를 모사했다(O)

    드라마에는 어린 사임당이 안견의 '금강산도'를 열심히 모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신사임당이 안견의 산수화를 모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율곡은 사임당의 행장(行狀·죽은 사람이 평생 살아온 일을 적은 글)에서 "7세 때부터 안견이 그린 것을 모방하여 산수도를 그리셨는데 지극히 신묘했다"고 썼다. 안견은 당대에 가장 뛰어난 화가로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죽어서도 그를 따르는 화가가 많아서 조선 후기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원복 관장은 "많은 화가가 교과서처럼 안견의 그림을 보고 그렸다"고 했다.

    기고자 : 허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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