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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발전이 놀랍도록 빨리 우리 생활을 바꾸고 있다. 미·일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포항에서 4세대 방사능 가속기가 운영되기 시작했다. 동영상으로 세포벽을 관찰하는 놀라운 기계로 각종 치료제 개발이 훨씬 쉬워진다. 최근 전임 미국 식약청장이 방한해 정밀 의료에 대해 강의하였다. 개인 염기서열을 판독해 본인에게 꼭 맞는 약을 처방하는 시기가 곧 온다고 한다. 늦어도 10년 안에 판독비가 5만원 이내로 내려가고, 모두가 혜택을 볼 것이라고 한다. 자율주행차도 성큼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편리할 뿐 아니라 차량 수도 줄일 수 있으니 경제적이고 환경친화적이다.

그런데 과학기술이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 수 있을까.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의사를 대신한다. 이미 CT나 MRI를 판독하고 진단하는 컴퓨터는 전문가 수준이다. 신경정신과 말고는 많은 의사가 직업을 잃을 수 있다. 전문직이 이러니 햄버거 가게는 더 심하다. 자동화로 전 세계 햄버거 가게의 아르바이트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수명 연장은 꼭 바람직한가. 구글은 '인간 수명 500세'를 향한 투자를 시작했다. 미래에는 돈 있는 사람만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 그런 사회에서 부자는 재산을 환원하지 않고 본인을 위해 더 축적하려 들 것이다.

이런 문제들까지 해결하려면 사회 안전망 구축과 함께 과학기술 정책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불가피하다. 무엇보다도 가장 바람직한 미래상을 세울 위원회나 상설 기관이 필요하다. 현재의 과학기술 컨트롤타워는 각 부처 의견을 조율할 뿐 거시적 결정 능력이 부족하다. 장기 비전 없는 땜질식 예산 배분도 지양돼야 한다. 이 상설 기구에는 과학자뿐 아니라 시민 대표, 법, 윤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함께해야 할 것이다.

연구 예산은 블록펀딩 형태로 지급되어야 한다. 국가가 큰 방향을 정하면 전문가가 연구 특성에 맞춰 배분해야 옳다. 비전문가가 과제별로 관여하면 개인이나 지역 이기주의로 흐를 수 있다. 잦은 정책 변화로 흐지부지 끝내는 일도 없어야 한다. 그리고 연구 보직자들의 임기가 보장돼야 한다. 길면 10년 지속되는 연구도 있는데 그 사이 담당 공무원과 관리 기관 담당자가 여러번 바뀐다. 특히 연구기관 수장의 임기를 보장하고 책임도 지게 해야 한다.

문일 한국연구재단 국책연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