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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화가 일리야 레핀의 그림 '이반 4세와 그의 아들 이반'은 아버지 이반이 쓰러진 아들을 부둥켜안고 몸서리치는 모습을 그렸다. 그림 속 아버지의 눈을 통해 슬픔과 공포가 사실적으로 다가오지만 아들을 쇠몽둥이로 때려죽인 장본인이 바로 아버지 이반이란 사실을 떠올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뇌제(雷帝)'로 불린 이반 4세는 폭군이었지만 러시아를 국가다운 국가로 만든 첫 군주였다. 이런 인물을 그린 대표 작품의 소재가 '가정 폭력'이라니. '러시아답다'고 할까.

▶러시아 소설만큼 막장 가정 드라마를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경우도 드물다. 스스로 가정 폭력의 희생자로 여겼던 도스토옙스키는 '아버지 살해'라는 극단적 소재를 다룬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마지막 대작으로 남겼다. 가정 폭력은 근대 이전 모든 나라에서 횡행하던 구태였다. 하지만 황량한 대지에서 추위와 가난과 싸우던 러시아야말로 가부장적 질서가 생존의 필요조건으로 통했을지 모른다. 

▶러시아엔 '남자가 여자를 때리는 것은 그녀를 사랑한다는 뜻'이란 속담이 있다고 한다. 사라진 전근대 유물로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푸틴 대통령이 가정 폭력을 사실상 방치하는 일명 '때리기법'에 서명했다. 가정 폭력은 뼈가 부러지거나 뇌진탕을 일으키는 수준이 돼야 제대로 처벌한다는 것이다. 푸틴은 앞서 "가정에 대한 국가의 무분별한 간섭을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프라이버시를 보장한다는 뜻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런 푸틴을 향해 환호하는 세계 마초 중 하나가 트럼프 미 대통령이다. 그는 얼마 전 푸틴을 "존경한다"고 했다. '푸틴은 (반대파·언론인 20여명을 암살한) 살인자 아니냐'는 질문을 받고는 '미국도 뭐 다르냐'는 식으로 답했다. 미국과 러시아는 가까울 수가 없는 관계다. 그래도 마초끼리는 통하는가 보다. 미국 국내 문제에선 사법·언론·기업이 제동을 걸기라도 한다. 하지만 그 성격이 언제 나라 밖으로 폭발할지 모른다.

▶푸틴의 때리기법과 트럼프의 '존경' 발언을 보면서 우리가 지금 어떤 지도자들에 둘러싸여 있는가를 새삼 실감한다. '스트롱맨(strongman)의 시대'라더니 그 현실이 피부에 와 닿는다. '제2의 마오쩌둥'이라는 중국 시진핑 주석도 별로 다르지 않다. 미국으로 건너간 일본 아베 총리는 트럼프와 필드에서 골프 우정을 다진다. 이들 사이의 한국은 얼마나 힘이 있다고 지금 세상과 담을 쌓고 극단적 내부 싸움으로 질주하는 중이다. 밖을 내다보면 가슴이 막힌다.

기고자 : 선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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