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급성 백혈병으로 골수 이식 수술을 앞두고 있던 최모(40·여)씨는 지난해 여름 항암 치료와 이식 수술을 중단해야 하는 위기에 처했다. 잇따른 항암제 치료로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폐렴이 발생해 항생제를 반복 복용하는 과정에서 심한 설사 증세가 나타났다. 항생제가 최씨의 건강한 장내세균까지 파괴하면서 염증을 일으키는 '클로스트리듐균'이 대장 안에서 과다 증식해 중증 설사를 일으키는 상황이 8개월간 다섯 차례나 발생한 것이다. 항암제도 못 쓰고 골수 이식 수술도 못 받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의료진은 최후 수단으로 최씨에게 '장내세균 이식 치료'를 권했다. 정상인의 대변을 생리식염수와 섞어 간 액체를 대장내시경으로 환자의 대장에 뿌려주는 치료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윤혁 교수는 "최근 3개월간 항생제를 복용한 적이 없는 건강인의 장내세균을 환자에게 이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 여동생이 기증자로 나섰다. 동생의 장내세균을 이식하자 기적처럼 설사가 멈추고 대장염이 회복됐다. 이후 최씨는 골수 이식을 받아 백혈병에서 벗어나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장내세균 이식 활성화

국내에서 3~4년 전부터 도입된 장내세균 이식 치료가 전국적으로 100여건 시술이 이뤄지는 등 점차 확산되고 있다. 치료 성공률은 80% 정도다. 2013년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 치료법은 항생제 복용 후유증으로 생기는 클로스트리듐균 과다 증식 대장염을 치료하는 데 주로 활용된다.

서울성모병원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가장 많은 50건 정도를 시술했다. 소화기내과 최명규 교수팀은 중증 설사 환자 7명에게 구강을 통해 관을 위장 안으로 넣고 그 안에다 장내세균을 이식해 완치시켰다. 이식된 장내세균이 소장을 통해 대장으로 흘러들어 가도록 한 것이다. 이 환자들은 클로스트리듐균 감염으로 중환자실 치료를 받고 있어서 대장 내시경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서울성모병원 측은 "입원 환자 1000명당 0.88명이 클로스트리듐균 감염증에 걸린다"면서 "상부 위장관을 통해 장내세균 이식 치료에 성공한 경우는 아시아에서 처음"이라고 말했다. 장내세균 이식 치료의 기증자는 주로 가족이나 친지가 나선다. 7명의 중증 사례 중 두 건은 담당 의사가 장내세균을 기증했다.

◇이식 방식과 기증자 규정 도입해야

미국 질병관리예방센터 통계에 따르면 미국에선 매년 50만여명이 클로스트리듐균 과다 증식 감염증에 걸려 이 중 1만4000여명이 사망한다. 이 때문에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기증받아 보관한 뒤 필요할 때마다 환자에게 투여하는 '장내세균 은행'을 운영하기도 한다. 국내에는 클로스트리듐균 감염증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다만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의 항생제 사용률이 높아 장내세균 이식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상당수 있을 것으로 의료계는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장내세균 이식 치료가 늘면서 "구체적인 치료 방식과 기증자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내세균을 이식하는 과정에서 기증자의 바이러스나 독성 세균이 환자에게로 옮겨갈 수 있는 등 위험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조영석 교수는 "미국도 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중"이라며 "인종마다 장내세균의 조성과 분포가 다르고 기증 문화도 다른 만큼 우리나라 사람 위주의 장내세균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대변 장내세균 이식(FMT·Fecal Microbita Transplantation) 치료

항생제 부작용 등으로 대장 내 병균이 과다 증식해 대장염이나 중증 설사 등을 일으키는 환자의 대장에 건강한 사람의 대변 속 장내세균을 이식하여 환자 장내세균의 조성과 분포를 정상으로 회복시키는 치료법.

[그래픽] 장내세균 이식 치료 / 장내세균 이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