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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反)이민' 행정명령이 항고심에서도 제동이 걸렸다.

제9 연방항소법원 재판부는 9일(현지 시각) 이슬람 7국 국민의 미국 입국을 일시 제한한 반이민 행정명령 효력을 미 전역에서 잠정 중단시켰던 하급심 결정이 계속 유지돼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3일 시애틀 연방지법에서 반이민 행정명령 효력 정지 결정을 받은 트럼프 정부는 이를 뒤집어 달라고 항고한 2심에서도 연패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결 직후 대법원에 재항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내용상으로 트럼프 진영의 완패였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지명한 온건 보수 성향의 리처드 클리프턴 판사까지 포함된 재판부 3명은 만장일치로 연방정부에 맞선 워싱턴주·미네소타주 법무부의 손을 들어줬다. 대선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트위터에 별다른 설명 없이 '3-0'이라고 썼다. 트럼프가 판사 3명의 만장일치로 패소했다고 조롱한 것이다. '7국 국민이 테러리즘과 연관이 있다' '사법부가 대통령의 국가 안보 관련 명령을 검토할 권한이 없다'는 등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연방정부는 행정명령에 명시된 국가에서 온 외국인이 미국에서 테러를 저질렀다는 점을 전혀 입증하지 못했다"면서 "(1심 법원의) 행정명령 일시 중지 결정이 (국가 안보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로 이어진다는 근거도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대중에게는 국가 안보와 선출된 대통령의 정책 집행 권한과 관련해 강력한 이해관계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동의 자유, 가족과 헤어지지 않을 권리, 차별받지 않을 자유에도 이해관계가 있다"고 했다. 다만, 재판부는 반이민 행정명령이 종교적 차별인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했다.

워싱턴주의 밥 퍼거슨 법무장관은 이날 결정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누구도 법 위에 설 수 없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라고 했고, 제이 인슬리 워싱턴 주지사는 "우리 주뿐 아니라 미국의 승리"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결 소식이 전해진 직후 트위터에 '법정에서 보자. 우리나라의 안보는 위험에 처해 있다!'는 글을 써서 대법원행(行)을 예고했다. 백악관 기자들에게는 "이번 결정은 정치적"이라며 "(대법원에서는)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2월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 사망 이후 대법관들은 진보 대 보수 성향이 4대4로 나뉘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보수 성향 판사인 닐 고서치를 연방대법관 후보로 지명했지만, 고서치 후보자가 이번 사건에서 트럼프의 힘이 돼주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연방정부가 대법원에 긴급 재항고 신청을 할 경우 다음 주 중에 (대법원에서) 결판이 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대법관들 의견이 동수로 맞설 경우 하급 법원의 판단을 준용하게 돼 있는 것도 트럼프에게는 불리한 조건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소위 판사'라는 표현 등을 동원해 사법부를 비판한 것에 대해 고서치 후보자가 "(사법부의) 사기를 꺾고 낙담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한 것도 트럼프에겐 부담이다. 트럼프는 고서치 후보자의 이 발언을 전한 리처드 블루먼솔(코네티컷·민주) 상원의원이 베트남전에 참전한 적이 없는데도 베트남 복무 경험이 있는 것처럼 발언했던 전력을 거론하며 그의 발언을 믿을 수 없다고 공격했다.

고서치 후보자 진영의 켈리 아요테 전 상원의원도 이날 성명을 내고 "고서치 후보자가 판사들에 대한 공격에 관한 일반론을 말했을 뿐이며 특정 사안을 구체적으로 지목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하며 봉합에 나섰다.

[그래픽] 反이민 행정명령 항고 기각 사유 기고자 : 김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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