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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도 한국에서 동계올림픽은 곧 쇼트트랙 아니면 스피드스케이팅을 의미했다. 스키나 스노보드 같은 설상(雪上) 종목은 '불모지'라는 한 단어로 표현됐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1년 앞둔 올 2월엔 분위기가 좀 다르다. 얼음뿐 아니라 눈에서도 '기대주'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 최전선에 프리스타일 스키 모글 종목의 '개척자' 서정화(27)가 있다.

서정화는 11일 평창올림픽 테스트 이벤트를 겸해 열린 모글 월드컵(휘닉스 스노우파크)에서 한국 여자 사상 처음으로 최종 결선에 진출하며 6위에 올랐다. 한국 여자 설상 올림픽 종목 선수 중 월드컵에서 새긴 최고 순위다. 2015년 같은 모글 종목 월드컵 듀얼모글(두 선수가 모글 경기로 경쟁하는 종목) 경기에서 서지원이 6위에 오른 적이 있다. 하지만 올림픽엔 듀얼 모글 종목이 없다.

현재 올림픽 메달에 가장 가까운 한국 여자 설상 종목 선수로 꼽히는 서정화는 아직 20대지만 한국의 모글 종목에선 선구자이자 베테랑이다. 그는 스키 마니아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네 살 때 처음 스키를 탔다. 모글 스키는 2001년 초등학교 5학년 때 입문했다. 2006년 정식으로 모글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국가대표에 선발돼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2010 밴쿠버올림픽, 2014 소치올림픽도 경험했다. 내년 평창올림픽에 나가면 벌써 세 번째 올림픽이다.

학창 시절 우등생이었던 그는 스키와 공부를 병행했다. 서울외고 졸업 후 미국 주요 명문대에 동시에 합격해 '공부하는 운동선수'로 화제가 됐다. 서정화는 미국 USC(남가주대)에 입학하고서도 학생과 스키 선수로 동시에 살았다. 이런 이유로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장학금도 받았다. 모글이 생소한 국내에선 늘 운동 얘기보단 '공부'에 방점이 찍혔다.

스키로 큰 성공을 거둔 적은 없지만 서정화는 끝까지 모글을 놓지 않았다.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독학으로 모글 기술을 익혔던 그였다. 미국에 가서도 전문 코치 없이 체력 훈련이나 웨이트 트레이닝을 혼자 했다. 그러다 만난 천군만마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스키 스타 토비 도슨(39)이었다. 2006 토리노올림픽 모글에서 미국 대표로 동메달을 딴 도슨이 2011년 말 한국 대표팀을 맡게 됐다. 서정화는 그를 만난 뒤 경기를 대비하는 습관부터 체력, 기술, 마음가짐까지 체계적으로 배웠고,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도슨 감독은 11일 경기 후 "서정화가 과거에 비해 한 단계 발전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며 "올림픽에서 세계 유명 선수들과도 충분히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서정화 역시 "올림픽 코스에서 좋은 성적이 나와 자신감이 생겼다"며 내년 평창올림픽 메달에 도전하겠다는 꿈을 내비쳤다.

파란불이 켜진 설상 종목은 또 있다.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이다. 김상겸(28)이 최근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김상겸은 12일 평창 월드컵에서 한국 남자 대표 8명 중 유일하게 16강 결선까지 진출했다. 지난달 유로파컵 금메달, 이달 초 월드컵 개인 최고 기록(10위)에 이은 선전이다. 한국 스노보드의 '간판' 이상호는 이번 대회엔 20위로 예선 탈락했지만, 지난해 12월 한국 설상 종목을 통틀어 월드컵 최고 성적(4위)을 기록했을 만큼 실력은 입증됐다. 이상헌(42) 스노보드 대표팀 감독은 "세계와 기량 차가 거의 없는 만큼 선수들이 훈련 때 기량을 실전에서도 이어갈 집중력만 갖추면 큰일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고자 : 이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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