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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복소복 눈 쌓이는 산골 마을, 빨간 지붕 얹은 외딴 집에서 돈도 벌지 않고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으며 사랑하는 이와 산다. tvN 예능 '신혼일기'는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만한 풍경을 펼쳐 보인다. 작년 5월 결혼한 배우 구혜선(33)과 안재현(30)이 주인공. 제작진 요청에 따라 보름간 개·고양이 이끌고 강원도 인제에 머문 실제 부부는 요리하고 장 보고 피아노 치고 산책하고 가끔 별것 아닌 일로 토라지며 시간을 보낸다.

스타 PD 나영석이 오랜만에 선보이는 새 프로젝트. 총 5회로 예정된 이 방송은 2회(금요일 밤 9시 30분)까지 시청률 5%대를 기록했다. 선남선녀의 일상적 관계와 대화, 갈등이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 속에 잔잔하게 담긴다. 나 PD 특유의 장기가 살아있다.

제목에서 예상되듯 신혼은 달콤하다. 서로 정수리 냄새를 맡고 방귀를 뀌면서도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겠단다. 맛없어 보이는 요리에도 극찬을 쏟아낸다. 전통적 성 역할이 뒤바뀐 듯한 이들 관계도 흥미롭다. 터프한 구혜선이 밖에 나가 장작을 구해 오고, 섬세한 안재현은 말 한마디에도 애정을 듬뿍 담는다. '저런 여자 참 괜찮다'는 남성 시청자는 물론 '저런 남자랑 살고 싶다'는 여성 시청자도 많다.

하지만 방송이 진행될수록 지루하고 생뚱맞다. 폭소가 터져 나오는 재미라든지 가슴 깊은 곳을 적시는 감동이 없어서가 아니다. 실제 부부의 '리얼'한 신혼 생활을 보여주겠다면서 이 부부를 왜 산골짜기 외딴 집에 보낸 것인지 설정부터 이해되지 않는다.

'신혼일기'는 나 PD 전작 '삼시세끼'의 연장선에 있다. '삼시세끼'는 산골이나 섬으로 간 연예인들이 하루 세 끼 먹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렸다. 대수롭지 않게 여겨온 하루 세 번 식사에 실은 대단한 정성과 노동이 필요하다는 걸 저절로 깨닫게 했다. 자연 속에서 오로지 밥 지어 먹는 것만 신경 쓰면 되는 삶을 구경하며 시청자들은 휴식을 얻었다.

'신혼일기'도 그림 같은 시골집을 배경으로 신혼이란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그 본질을 보여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평소 생활 현장을 멀리 떠나니 신혼은 판타지가 돼 버렸고, 부부 사이 대화는 공허하게 겉돈다. "밥벌이의 고단함과 그에 따른 가사 분배 갈등, 다른 가족들과의 미묘한 관계를 모두 배제하고 나면 결혼 생활에는 대체 무엇이 남을까. 2편에 '결혼은 현실이다'라는 거창한 제목이 달려 기대했지만, 소꿉장난 같은 대화만 이어질 뿐이다."(최수현 기자)

"달콤하다는 것 말고는 더 풀어나갈 얘기가 없어 보인다. 과자로 이벤트를 하고, 색종이로 학을 접다가, 피아노까지 치니 20대 싱글 남성으로서 피로감을 느꼈다."(박상현 기자) "신혼은 대개 깨소금보다 고춧가루가 더 많이 날리고, 싸우고 화해하고 삭이면서 치열하게 보내는 시기였다. 싱글 여성들이 이 방송 보고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가질까 살짝 걱정된다."(김윤덕 기자)

'신혼일기'는 현실과 판타지 사이 어정쩡하게 걸쳐 있다. 여기서 거부감이 생겨난다. 방송을 앞두고 제작진은 "출연진이 두 명뿐이고 미션이 없어 재미를 보장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시청자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공감이 핵심이란 뜻인데, 왜 '내 얘기' 같지 않은지, 그것이 문제다.

[그래픽] tvN '신혼일기' 기고자 : 최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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