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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12시 20분, '은반의 황제'로 통하는 하뉴 유즈루(23·일본)가 등장하자 강릉 아이스아레나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그를 보기 위해 아침 일찍 빙상장을 찾은 한·중·일 3개국 팬 200여명이 일제히 '하뉴, 하뉴'를 외쳤다. 하뉴가 관중석으로 가까이 가자 기관총 같은 카메라 셔터 소리가 경기장을 채웠다.

하뉴가 한국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는 16일부터 나흘간 열리는 ISU(국제빙상연맹) 4대륙 피겨선수권대회 출전을 위해서다. 내년 평창올림픽 테스트 이벤트를 겸해 열리는 이번 대회엔 유럽을 제외한 세계 피겨 스타들이 총출동하는데, 그중 최대 관심은 단연 하뉴에게 쏠리고 있다. 지난 소치올림픽(남자 싱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그는 평창에서 대회 2연패에 도전한다.

40분 남짓한 훈련을 마치고 나온 하뉴는 "빙질과 시설이 훌륭하다"며 "올림픽 경기장에 오니 행복하다. 평창에서 우승할 확신이 섰다"고 했다. '한국에도 많은 팬이 있다'는 취재진의 말에 그는 서툰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저는 유즈루입니다. 응원 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하뉴는 이날 쇼트프로그램 점프 연습에 집중했다. 자신의 주무기인 쿼드러플(4회전) 루프와 트리플 악셀 등을 합해 스무번가량을 뛰었다. 쿼드러플 살코 착지 실패로 엉덩방아를 찧은 뒤엔 이 점프만 5~6번 반복하는 열의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회가 '4회전 점프 전쟁'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피겨 왕좌를 노리는 도전자 중 '점프 기계' 네이선 첸(18·미국)의 상승세가 뚜렷하다. 첸도 14일 한국에 입국해 대회 준비에 돌입했다. 첸은 지난 1월 열린 전미 피겨선수권대회에서 공식 대회 최초로 4회전 점프를 7회(쇼트 2회, 프리 5회)나 성공시켰다. 국내 대회라서 ISU 공인은 받지 못했지만 그의 스코어(318.47점)는 하뉴의 세계 기록(330.43점)에 이어 역대 둘째로 높은 점수였다.

보통 4회전 점프를 뛰고 착지하면 몸무게의 7~8배에 달하는 하중이 쏠린다고 한다. 점프 한 번을 더 하기가 그만큼 어렵다. 안소영 대한빙상경기연맹 이사는 "4회전 점프 대결에서 이기는 선수가 평창(남자 싱글)의 영광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중국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첸은 주니어 시절부터 미국 랭킹 1위를 도맡았다. 이미 15세 때 4회전 점프를 처음 뛰며 '피겨 천재'란 수식어를 달았다. 하지만 지난해 1월 왼쪽 엉덩이뼈를 크게 다치며 주춤했다. 목발에 의지하며 재활을 거듭한 그는 6개월 만에 다시 스케이트를 신을 수 있었다. 첸은 '실전 스타일'로 점프 실력을 키웠다고 한다. 일단 연습 때 한 번이라도 성공해 본 점프는 곧바로 실전 프로그램에 포함시키는 식이다. 무모해 보일 정도로 과감하지만, 그만큼 실전 적응력에 자신 있다는 의미다. 현재 네 종류(토루프·플립·러츠·살코) 4회전 점프를 마스터한 첸은 점프만 놓고 봤을 땐 하뉴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적 선수들이 모이는 이번 대회는 흥행 면에서도 '대박'이 될 전망이다. 일부 좌석이 매진되는 등 온라인 입장권 3만1900장이 판매(13일 기준)되며 2015년 목동에서 열렸던 같은 대회 입장권 판매량(6500장)을 이미 훌쩍 넘었다.

[표] 완벽한 '피겨 챔프' vs 돌풍의 '점프 기계'


기고자 : 이순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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