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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 가는 일이 잦아졌다. 더운 물이 콸콸 나오던 강남 아파트에서 최근 강북 단독주택으로 이사 온 뒤부터다. 아내보다는 아들과 가는 것을 내심 반긴다. 아들과 가는 목욕탕은 대개 한 시간 안에 끝난다. 하지만 아내는 꼬박 두 시간이 걸린다. 아내를 기다리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탕에서 졸기도 한다. 한 시간을 발가벗고 지낸다는 것은 쉽지 않다

아들과 하는 목욕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다 큰 아들 등을 밀면서 세월이 흘렀음을 실감한다. 한 지붕 아래 살지만 아들과 대화하기가 쉽지 않다. 아들은 주로 제 방에서 지내고 식탁에서도 스마트폰에 열중이다. 예전에는 뭐라고 나무랐지만 요즈음은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그러니 만큼 아들과의 목욕 나들이는 최적의 소통 공간이 된다. 아들 세대의 관심사를 듣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목욕을 끝낸 아들은 타월을 한 장만 사용한다. 큰 덩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지만 딱 한 장 쓴다. 아득한 시절, 아들과 처음 목욕탕 갈 때 말했다. 남들이 몇 장을 쓰든, 우리는 한 장씩만 사용하자고. 내 말을 기억하는 아들은 젖은 타월을 짜가며 한 장만 쓴다. 그런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문득 동네 목욕탕 타월도 호텔 사우나처럼 좀 더 두껍고 풍성했으면 하고 기대해 본다.

교수식당은 각자 챙기는 카페테리아식이다. 가끔 들르는 식당 진열대 주변에는 찬과 밥들이 흩어져 있다. 말없이 그것들을 내 그릇에 담아 먹는다. 조교들이 질색을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우리 집에는 요리가 따로 없다. 밥, 된장국, 김, 김치가 일년 365일을 관통하는 메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먹방에 대한 약간의 반감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주재하는 식사 자리에는 원칙이 있다. "험블(humble) & 심플(simple)", 즉 "겸손하고 소박하게"이다. 주변 불만이 거세다. 한 선배는 돈을 자기가 내는데도 맘대로 먹지 못하게 한다며 언성을 높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박한 식사를 고집한다. 그러면서 나의 원칙을 지지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김동률·서강대 MOT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