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그 남자'의 속사정이 궁금했다. 지난 두 시즌 연속 프로배구 챔프전 정상에 올랐던 팀은 1년이 채 안 돼 7개팀 중 '꼴찌'로 전락했다. 감독 생활 3년 만에 우승 반지 2개를 거머쥐며 '명장'이라고 불렸던 남자는 이제 비난의 중심에 서 있다. 인터뷰에 응할지 반신반의했는데, 의외로 흔쾌히 'OK'라고 한다. 최근 경기도 용인 훈련장에서 만난 OK저축은행 김세진(43) 감독은 기자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요즘 저요? 고개 숙인 남자죠.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는데… 팬들에게 가장 죄송합니다."

OK저축은행은 15일 삼성화재전에서도 1대3으로 지며 시즌 25패(5승)를 떠안았다. 현재 승점 15로 1위인 대한항공(승점 61)에 무려 46 차이가 난다.

지난 시즌 챔피언이 어떻게 이처럼 추락할 수 있을까. 역대급이라는 외국인 선수 로버트랜디 시몬(쿠바)이 떠났다지만, 선수 하나가 빠졌다고 팀이 무너지는 건 이해하기 어려웠다. "시몬의 공백도 크지만 송명근과 박원빈·송희채 등 주전 대부분이 부상이어서 훈련을 제대로 못 했어요. 영입했던 외국인 선수도 결국 '실패'로 끝났고…. 핑계를 찾자면 끝도 없어요. 결론은 다 제 책임입니다. 감독으로서 준비에 소홀했던 거죠." '월드스타'로 불렸던 선수 시절 김세진은 실패를 몰랐다. 감독 역할을 만만하게 본 것 아니냐고 하니까 싱겁게 고개를 끄덕인다. "선수 땐 자기 역할만 하는데, 감독은 팀 전체를 봐야 해요.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꼴찌팀 사령탑이지만 표정은 밝았다. '울상'을 짓고 있을 거란 예상이 빗나갔다. "프로는 팬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도 중요하잖아요. 지난달 올스타전 감독 맡았을 때도 마음은 무거웠지만, 배구코트 찾은 팬을 위해 더 '오버'했습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체중이 최근 6㎏ 줄었다고 한다. '주당'인 그에게 요즘 술을 더 자주 찾지 않냐고 묻자 "혹시라도 실수할까 봐 오히려 못 마신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 감독은 팀 관련 기사와 댓글을 거의 챙겨본다. 그중에선 '당장 물러나라'는 의견도 있다. 정말 사퇴할 생각도 있을까. 그는 약간 발끈했는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만두는 것이 책임지는 것이라면 당장 오늘이라도 관두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게 회피라고 생각해요. 팀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제 책임이자 짐이죠." 그는 "욕먹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김세진만의 '배구 스타일'은 누가 뭐라 해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수들에게 친숙한 형처럼 다가가는 김세진식 '형님 리더십'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시몬이 팀에 있을 때 클럽문화를 궁금해하자 직접 운전해서 데려간 적도 있다. 팀은 최하위를 달리지만 선수들을 다그치지 않는다. "혼내서 뭐하나요. 선수들은 더 죽을 지경이겠죠. 다만 '경기에서 지더라도 작은 것 하나라도 꼭 배우고 연습하라'고 말합니다. 리시브든 속공 수비든 뭐든요. 그렇게 해야 포기하지 않고 다시 치고 올라갈 힘이 만들어지니까요."

다음 시즌 김 감독의 목표는 7개 팀 중 중간인 4위라고 한다. 너무 소박하지 않냐고 묻자 그가 미소 지었다. "떨어지는 건 한순간인데, 다시 오르는 건 쉽지 않아요. 인생처럼. 한 계단씩 천천히 밟아 보겠습니다."

기고자 : 이순흥
본문자수 : 1613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